차번호 조회해 개인 신상명세 알아내/사생활 침해 범죄에 악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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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구청·군청서 손쉽게 “접근”/행정전산화로 전국 어디든 가능/“신청자 신원확인 등 대책 마련을”
행정전산망 등 공공목적으로 관리하는 개인신상정보 유출에 따른 사생활침해 우려가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차량번호를 조회,주소 등 개인 신상명세를 알아내 범죄에 이용하는 사례가 잇따라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현행 교통행정상 누구나 차량번호만 알면 차량 소유자의 이름·주소·주민등록번호·차종 등이 기재된 자동차등록 원부를 열람·발부받을 수 있다는 허점을 악용,범죄꾼들이 차량절도·공갈·협박 등을 저지르고 있으나 현재로선 무방비 상태다.
특히 자동차관리사업소에서 집중 처리해오던 자동차등록 관련업무가 올해 1월부터 각 구청·군청으로 분산되고 차량등록의 행정전산화로 전국 어디서나 차량조회를 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앞으로 차량번호 조회를 악용한 피해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범죄 및 사생활침해=지난 16일 서울 동대문경찰서에 공갈혐의로 구속된 장영기씨(32·택시운전사) 등 4명은 탈선 주부의 차량번호를 조회,주소 등을 알아내 『불륜관계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 수법으로 15명으로부터 3천여만원을 뜯어내는 등 유사범죄가 꼬리를 물고 있다.
이들은 서울 근교 러브호텔 주변에 숨어 있다 차에 남자를 태우고 드나드는 주부들을 사진으로 찍은뒤 서울 중랑구청에서 자동차 등록원부를 열람,주소·이름을 알아낸 것으로 밝혀졌다.
또 지난 6월10일엔 거리에 다니는 승용차 번호를 기록해두었다 그 차량의 등록원부를 뗀뒤 소유자의 주소지를 찾아가 절도하는 수법으로 고급승용차 15대를 훔친 김헌석씨(34·무직·서울 양재동)가 서울 강남경찰서에 붙잡혀 상습절도 혐의로 구속됐다.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S여대생 정모양(21·서울 서초동)은 한달 전부터 자신의 승용차를 조회,주소·이름을 알아냈다는 괴남자가 짓궂은 장난 편지·전화를 계속해와 경찰에 진정하기도 했다.
◇문제점=서울시의 자동차등록원부 발급건수는 ▲89년 46만건 ▲90년 56만건 ▲91년 65만건으로 자동차 증가에 따라 연 10만여건씩 느는 추세.
현재 각 구청에서는 민원서류에 신청자의 이름·주소 등을 기재케 한뒤 자동차 등록원부를 열람·발부해주고 있으나 신청자의 신원을 확인하지 않아 신분을 숨기고도 아무 규제없이 차량조회로 개인의 신상명세를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자동차등록원부 열람·발부 과정에서 주민등록 조회처럼 신청자를 본인·가족에게만 제한하지는 않는다 해도 최소한 소유자 위임장 첨부나 신청자 신원확인 등을 통한 규제절차는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시 교통기획과 전장하과장은 『지금까지 자동차관리법상 차량조회를 규제할만한 관계 규정이 없고 차량매매 등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규제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었다』며 『그러나 이를 악용한 범죄가 계속 늘어난다면 규제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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