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악순환 끊고 '마지막 프런티어' 변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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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08면

1.케냐에서 수박 장사를 하는 한 여성이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이 확산되고 있다. 아프리카 지하경제 규모가 상당히 커 숨은 구매력이 있는 것도 한 배경이다. [AP=연합뉴스] 2. 상하이에서 5월 16일 개최된 아프리카개발은행 그룹 이사회에 참석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3. 코트디부아르 내전(2002~2003)에서 정부 편에 섰던 민병대원들이 5월 19일 그들의 무장해제를 기념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4. 나이지리아의 한 여성이 4월 21일 자신의 투표용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날 치러진 대선 및 총선에서 야당은 선거 부정에 항의했다. [블룸버그 뉴스]

인류의 요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가난하다. 그래서 대외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유엔 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77개국 중 가장 가난한 23개국은 모두 이 지역 국가다. 이곳 사람들 중 반 이상이 하루 1달러 이하로 연명한다. 왜일까? ‘내 탓’ ‘네 탓’이 있겠다.

탄약을 가지고 놀다가 발생한 폭발로 부상 당한 소말리아 어린이들이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AP=연합뉴스

‘네 탓’부터 살펴보자. 나라가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나라가 있어야 한다. 참여적 민주정치나 투명한 시장경제도 중요하겠지만 일단 나라가 있어야 한다. 나라의 질(質)도 중요하다. 급속한 발전을 이룩한 동아시아의 나라들은 모두 나라의 역사가 오래다.

아프리카는 사정이 다르다. 식민시대 전에는 약 1만 개의 국가나 정체(政體)가 있었는데 그중에는 말리, 송가이, 베냉 등 위세를 자랑하는 왕국이나 제국도 있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는 현재 42개 국가가 있다. 1만 개를 42개로 줄인 것이 서구의 공헌이라면 공헌이다. 그러나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로 이 지역 ‘나라’들은 정상적인 국가형성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식민지 시대가 독립 후 발전에 필요한 초석을 다져준 것도 아니었다. 특히 식민통치상의 이득과 무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간접통치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전통적 구조를 없앤 것도 아니었다. 인위적인 영토분할의 결과 독립 이후에는 기형적인 국가와 국경이라는 짐을 져야 했다.

부족 갈등은 식민주의가 남긴 최악의 유산이다. 독립 후 빈발한 내전은 최근까지도 계속된다. 콩고민주공화국의 경우 1998년 분쟁이 시작된 이래 400만 명이 사망했다. 한동안 비교적 안정된 정부와 고성장을 자랑하던 라이베리아나 코트디부아르 같은 국가들도 결국에는 내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식민지 모국과 식민지의 불공정한 관계도 아직 살아있다. 빈곤퇴치 운동기구인 옥스팸(Oxfam)의 추산에 따르면 선진국들의 높은 관세와 자국 농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으로 개발도상국들은 연간 1000억 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다.

다음은 ‘내 탓’을 따져보자. 이 지역 국가들은 대부분 쿠데타와 군부 독재를 경험했다. 1960~80년대에 아프리카에는 70여 개의 쿠데타가 있었다. 암살된 대통령만도 13명이다. 아프리카는 사실 자원이 풍부하다. 금, 다이아몬드, 코발트는 각기 세계 매장량의 54%, 47%, 68%를 차지한다. 그러나 풍부한 자원은 성장의 동력이 되지 못했다. 부패한 정치인, 관리, 기업인들은 해외로 재산을 빼돌렸다. 1997년 사망한 모부투 전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의 경우 32년 철권통치로 약 50억 달러를 착복했다. 마을에서 출세한 인물이 나오면 그가 온 마을을 책임져야 하는 전통문화도 부패의 한 원인이다.

종교 간 갈등도 국가 발전을 저해한다. 이슬람의 남하와 그리스도교의 북상으로 나이지리아나 코트디부아르 등은 남부의 그리스도교와 북부의 이슬람으로 나라가 양분됐다. 나이지리아의 경우를 보자. 2006년 2월 덴마크의 한 신문이 예언자 무함마드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한 만평을 게재했고 이를 계기로 나이지리아에서 종교 간 충돌로 100명이 사망했다. 2003년 11월에는 나이지리아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스월드 선발대회가 폭력사태로 무산되기도 했다. 한 신문이 무함마드가 살아있다면 대회에 출전한 미인과 혼인했을 것이라는 글을 실었기 때문이었다.

환경변화로 인한 가뭄 등 어쩔 수 없는 이유도 있다. 특히 지리적ㆍ환경적 요인이 저발전의 큰 원인이다. 열대 우림은 교통과 유통을 저해한다. 또한 아프리카에는 국제 해상 물류망에 접근할 수 없는 내륙국이 15개국이나 된다. 에이즈도 이 지역에 막대한 손실을 안겨주고 있다. 세계 인구의 약 12%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은 세계 에이즈 감염인구의 60%를 차지한다. 과거의 노예무역과 마찬가지로 에이즈는 큰 노동력 손실을 안겨주고 있다.

그렇다면 희망은 없는 것일까? 아니다. 아프리카는 꾸준한 정치 발전을 해왔다. 2006년 프리덤하우스 보고서에 따르면 1976년에는 이 지역에서 자유국은 3개국, 부분 자유국은 16개국에 불과했고 비자유국은 25개국이었으나 2006년에는 자유국과 부분 자유국이 각각 11개국, 23개국으로 늘어난 반면 비자유국은 14개국으로 줄었다. 또한 23개국은 선거 민주주의가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분류된다.

경제적으로도 진전이 있다. 올해를 비롯, 최근 수년간 5% 이상의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 석유개발에 힘입어 두 자릿수 성장을 하고 있는 국가로는 앙골라, 수단, 적도 기니 등이 있다. 휴대전화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아프리카 총인구 9억600만 명 중에서 휴대전화 소지자는 1억 명으로 추산된다. 2004년의 경우 이 지역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67%나 증가했다.

국제상황도 나쁜 것만은 아니다. 현재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침에 따라 개혁을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 결과 내치가 투명하고 효율적이 될 수 있다. 2001년에는 아프리카연합(AU)이 결성됐다. 1963년 출범한 아프리카단결기구(OAU)의 후신이다. 단일 화폐ㆍ국방 체제를 갖추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또한 아프리카연합은 민주주의, 인권, 지속 가능한 경제를 추구한다.

2010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월드컵이 개최된다.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이 지역에도 서광이 비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석유가 부르는 국제 갈등

5월 21일 미국을 비롯한 G8 국가들은 중국이 아프리카에 향후 3년간 200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한 결정을 비난했다. 중국의 무분별한 지원이 '책임 있는' 차관 제공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G8의 내심은 아프리카에 대한 ‘엄한 사랑(tough love)’으로 아프리

카 정부들의 개혁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마찰의 배경은 석유다. 2006년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정부들은 106건의 석유ㆍ가스 탐사권을 부여했다. 지난 5년간 발견된 유전의 3분의 1은 서아프리카에 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의 50%는 석유 부문에서 이뤄지고 있다.

아프리카 석유가 각광을 받는 이유로 우선 우수한 품질을 들 수 있다. 황 성분의 비율이 낮아 공정이 쉽고 생산비도 낮다. 중동보다 운반비도 적게 든다. 게다가 자원 민족주의가 강한 다른 지역에 비해 아프리카는 석유 관련 투자에 대해 호의적이다.

이처럼 인기 있는 아프리카 석유에 중국은 당연히 관심이 많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석유 소비국이며 현재 중국에서 소비되는 석유의 25%는 아프리카산이다.
중국은 지난 50년 동안 꾸준히 아프리카에 공을 들여 왔다. 그 결실을 석유 부문에서 거두는 데 관심이 없을 수 없다. 1975년 완공된 탄자니아ㆍ잠비아 철도는 4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 원조로 건설됐다. 중국은 2006년 10월 중국ㆍ아프리카 정상회의를 베이징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이제 아프리카에 중국은 프랑스ㆍ미국에 이은 세 번째 무역상대국이다. 2000년 110억 달러, 2006년 550억 달러였던 아프리카-중국 무역은 2009년에는 1000억 달러를 돌파할 예정이다. 미국 또한 석유의 15%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들여오고 있으며 불안정한 중동 원유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 미국은 올해 2월 아프리카 사령부를 창설했으며 미군은 세네갈ㆍ말리ㆍ가나ㆍ가봉ㆍ나미비아에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아프리카 석유개발에는 불안정 요인도 많다. 세계 8위의 석유 수출국인 나이지리아는 지난 18개월간에 걸친 반군 세력의 공격으로 석유 생산이 3분의 1 가량 줄었다. 그러나 석유 확보라는 대명제를 감안하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석유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국제유가는 앞으로 중동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동향에 더 큰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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