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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드리블’하는 전쟁터이자 해방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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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08면

사진 이영목 기자(일간스포츠)

환희와 탄식, 꿈과 좌절, 눈물과 땀방울이 가득 배어 있는 축구장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삶의 모서리에서 떠오르는 둥근 공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것이 우리 삶의 목표(goal)에 다다를(in)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정월 밤하늘의 보름달을 쳐다보며 소원을 빌 듯, 축구장 하늘 위로 높이 떠올랐다 떨어지는 공에 우리는 희로애락이라는 삶의 포물선을 대입하곤 한다.
“천천히 축구공이 하늘로 떠올랐다./ 그때 사람들은 관중석이 꽉 차 있는 것을 보았다./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안에 서 있었고,/ 그러나 심판은 호각을 불었다: 오프사이드.”
2002년 한ㆍ일 월드컵 전야제에서 독일의 작가 귄터 그라스가 발표한 축시 ‘밤의 경기장’ 전문이다. 우리에게 장편소설 『양철북』으로 잘 알려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축시는 축구장의 새로운 모습을 전한다.

新문학기행-축구장

개인은 자기 삶의 골키퍼
즉, 축구가 열리는 경기장은 인종·종교·언어를 넘어서 세계인을 하나로 통합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대중 속의 고독이 절절히 드러나는 고독한 장소이기도 하다. 시인은 관중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본다. 그는 그러나 골 에어리어 안에 고독하게 홀로 서 있는 골키퍼를 바라본다. 시인이란, 그리고 삶이란 마치 골키퍼처럼 대중 속에 있지만 그 속에서 외로운 사람과 닮아 있다.
갈수록 빨라지기만 하는 맹목적 삶의 속도. 이는 삶의 골네트를 흔들기 위해 득달같이 앞서 나가는 대중의 욕망과 겹쳐 있다. 시인은 그 욕망을 ‘오프사이드’ 반칙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시인은 맹목적 삶의 속도에 대한 최후의 보루이자 골키퍼다.

더 빨리 가겠다고, 더 많이 벌어보겠다고, 더 많은 골을 얻어보겠다고 아득바득하는 우리 중생들의 아귀다툼 앞에서 시인은 그 욕망의 골문을 쉽게 허락하지 않겠다며 버티고 선 형국이다. 알제리 대학팀에서 골키퍼로 활동했던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내가 궁극적으로 알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윤리나 의무란 축구선수로서 내가 지녀야 할 윤리나 의무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돌아보면 나는 평범한 사내/ 거리를 걸으면 보이지도 않지/ 내가 지금 여기 살고 있다는 건/ 아무 사건도 아닌 일상일 뿐/ 하지만 나는 골키퍼/ 장갑을 끼고 골대 앞에 서면/ 승부를 좌우하는 수문장이 되지/ 운동장에서 제일 외로운 자리/ 내 뒤에 천국과 지옥이 있지.”(전윤호, ‘골키퍼의 노래’ 부분)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경쟁사회에서 순간의 방심은 삶이라는 게임의 패배를 부른다. 수세에 몰릴수록 경쟁자의 공격은 집요해진다. 우리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닌 인간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자기 자신에 관해서는 최후를 책임져야 하는 삶의 골키퍼. 세상 도처에서 날아오는 강슛에 가슴이 멍드는 일상 속에서 산다. 이럴 때 축구장은 일상의 탈출구요, 무중력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전 세계의 수억 명 축구팬에게 축구장은 하나의 우주이자 수많은 드라마가 펼쳐지는 인생의 스크린이 된다.
 
욕망의 공간, 치유의 공간
“얼마나 넓은 운동장인가/ 크기를 잴 수도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는/ 우리가 별이라고 부르는/ 둥근 공들이 떠다니는 우주는,/ 그 안에 좁쌀보다도 작은 지구를/ 나는 너무도 힘들게 발로 굴리며/ 날마다 동동거리며 산다.”(이근배, ‘날개가 없어도 공은 난다’ 부분)
무수한 항성으로 구성된 은하계에서 우리가 사는 별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 좁쌀보다 작은 지구 위에서 동동거리며 사는 우리에게 둥근 공이 둥둥 떠다니는 축구장은 무거운 일상의 중력을 벗어난 자유 공간이 된다.
하지만 때로 축구장은 전쟁터가 된다. 최근 K-리그 최다 관중 수를 기록한 서울과 수원의 경기가 벌어진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응원단과 선수들은 전의와 함성으로 그라운드를 뒤덮었다. 밀고 밀리는 공방전은 총소리 없는 시가전(市街戰)을 방불케 했다.

전사(戰士)들을 지휘하는 감독의 작전은 전술(戰術)이요, 적의 고지(상대팀 골네트)에 도달하기 위해 하프라인[국경]을 넘어 진격해 나가는 그라운드는 전선(戰線)이 된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애칭도 태극의 전사(戰士)가 아니던가. “축구는 쇼비니즘과 애국적 히스테리를 자극할 만한 충분한 소지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축구 칼럼니스트인 정윤수씨는 축구를 “문명화와 현대성에 의해 거세된 원시적 에너지를 회복하려는 현대인의 욕망”이자 “20세기의 야만이 남긴 대립과 제도의 억압을 벗어나려는 치료제”라고 여긴다.
축구장은 원시적 욕망의 공간인 동시에 치료의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축구장은 성별·계층·이념이 서로 다를지라도 그 차이를 축제의 열기 속에서 녹여내는 용광로 역할을 한다. 축구장은 열린 광장이다. 그곳에서 잠시 평등과 자유를 만끽하고 골 세리머니의 기쁨을 공유한다.
 
22명의 군무가 펼쳐지는 무도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의 젊은 시인들로 구성된 축구팀을 사실상 이끌고 있는 김경주 시인의 말을 들어보자. 그에 따르면 말처럼 리듬감을 탄 선수들의 움직임이 있는 그라운드는 춤과 흥으로 만개한 축제의 공간이다.
“적어도 내게 축구는 전투장이라기보다는 무도장에 가깝다. 11명의 선수들이 무용수처럼 자신의 춤을 펼치다가 나오는 것이 축구다. 한 그룹의 춤이 몰려오고 물러나면서 그들은 90분의 시간을 오로지 제 몸으로 이끈다. 어떤 춤도 우리가 비웃을 수 없듯이 누구든 그 춤을 따라 할 수 있다. 축구가 축제의 형식으로서 진정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선 그래야 할 것 같다. 단지 흥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바로 그 ‘무도장’에서 우리는 우주와 소통했던 유년의 아득한 기억과 건강한 감각을 다시 돌려받는다. 영혼의 날개를 단 둥근 공이 떠다니는 궁륭과 같은 운동장은 삶을 충일시키는 행복한 놀이터이고, 유년의 원형적인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창고인 것이다.

“호루라기 소리 들려오면/ 더욱 겁나지 않는 얼굴들/ 저희끼리 모여,// 마음을 쌓아두고 불을 지피는 때,/ 이 마지막 남은 칼/ 이 부끄럽지 않은 몸짓!”(이성부, ‘슬라이딩 태클’ 부분)
그렇다. 축구는 김수영 시인의 말마따나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행위이다. 이때 축구장은 몸짓으로 소통과 어울림을 구현하는 공간이다.
이른 새벽하늘의 마지막 별빛에 눈을 씻으며 어둠을 쫓듯 공을 차는 조기축구회 사람들이든, 동네 학교 운동장이나 공터의 맨땅에서 무릎과 팔꿈치가 깨지도록 공을 차는 시골 청년회 축구팀이든, 한강변 잔디구장을 빌려 나이와 직업과 신분을 묻지 않은 채 상대팀 선수들과 함께 땀을 흘리는 외로운 도시인들이든, 그들에게 축구장은 해방구다. ‘3·5·2’ ‘4·3·3’ 전술도 필요 없이 ‘삼삼오오’ 모여서 ‘뻥축구’를 한다. 적어도 그들에게 축구장은 ‘라인’과 ‘경계’가 없는 유일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에라, 모르겠다!
뚜렷한 라인[線]도 경계도 없이
삼-오-이, 사-삼-삼,
삼-삼-오-오
대한민국 시인들이 축구를 한다
글발이냐, 말발이냐
대충 우기고 봐주며 뻥뻥,
잘도 공을 찬다
-고영민, ‘시인들이 공을 찬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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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안씨는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 편집인으로 일하는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축구단 ‘글발’ 팀의 주전 미드필더입니다.

축구는 내 詩의 힘
-고영민 시인과 그의 시 ‘비둘기 라인’

고영민 시인은 축구광이다. 문단 모임에는 드물게 얼굴을 내밀지만, 축구경기에는 천재지변이 없는 한 참석한다. 왼발잡이인 그는 시인축구단 ‘글발’의 왼쪽 날개다. 프로축구팀 FC서울의 골수팬이어서 장석주ㆍ김요일 시인 등과 함께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자주 찾는다.
그에게 축구장은 ‘원형극장’이다. 거기서 드라마틱한 한 편의 종합예술을 본다. 육체와 공이 만들어내는 제식(祭式)과 축제와 서커스를 즐긴다. 그의 시 ‘비둘기 라인’(발표 당시 원제목은 ‘시인들이 공을 찬다’)은 그가 속한 ‘방일(서울 방배1동) 조기축구회’ 경기 때 착상한 작품. 석회가루가 똑 떨어지는 바람에 밀가루로 경기장 라인을 그었다. 온 동네 비둘기들이 라인을 삼켜버렸다. 비둘기들이 ‘경계’를 지운 셈.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마음껏 뛰어노는 사람, 생계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초연한 척하는 사람, 세속의 경계를 지우는 사람이 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년 고영민의 장래 희망은 축구선수였다. 충남 서산 일대의 초등학교팀들과 홈 앤드 어웨이 경기를 펼쳤다. 중학교 1학년 말 축구 명가인 서울 경신중학교로 전학하면서 꿈을 접었다. 그가 육백만불의 사나이였다면 진짜 축구선수들은 수퍼맨에 가까웠다.
그러다 5년 전쯤 조기축구회에 가입했다. 골 세리머니는 브라질 선수 호나우지뉴의 것을 흉내 낸다. 손을 소라 모양으로 만들어 귀에 댄다.
“제 자신을 위한 격려의 세리머니죠.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꿈을 버리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 꿈은 이루어진다는 자기 암시를 주는 거죠.”
시와 축구는 아메바와 공룡처럼 먼 관계인 양 여겨진다. 하지만 그에게 축구는 시업(詩業)을 자축케 하는 세리머니다.
김중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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