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4598>|형장의 빛 박삼중(33)|산사의 전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88년11월23일 연희동 집을 반납하고 백담사로 떠난 전두환 전대통령을 나는 세번 만났다. 처음 백담사를 찾은 것은 전씨가 도착한 이튿날 저녁 무렵이었다
83년 무렵 재일교포 간첩 사형수 손유형 구명운동을 하다가 전대통령에게 탄원을 했더니 무기로 감형시켜 준 일이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보은의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TV를 통해 본 침통한 표정의 전씨에게 정신적으로 희망을 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백담사로 향했다. 어려울때 사람을 찾아보는 것은 인지상정이요, 또 그곳은 스님신분인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손유형은 12세 때 밀항선을 타고 일본에 건너가 역경을 겪으면서 많은 재산을 모았다가 더 많은 부와 명예를 누리기 위해 공산주의자가 되어 조국을 버렸다.
거류민단으로 위장, 국내에서 간첩활동을 하던 손은 결국 검거돼 82년 사형수의 몸이 되어 서울구치소에서 복역 중 나와 만났다. 옥중에서 후두암과 위암에 걸렸으나 일본에서 약을 공수해서까지 인도적인 치료를 해주자 그는 마음을 돌렸고 90노모를 위해 매일 염불하는 효자가 됐다. 그의 전향과 효성을 높이 사 조국을 배반했던 그에게 전대통령은 8·15특사로 무기로 감형시켜 주었던 것이다.
내설악은 낙엽이 깊이 쌓였고 수많은 신문·잡지 기자들로 때아니게 부산했다. 계곡에 포진한 기자들은 나를 막고 『백담사 감옥에 있는 전씨를 교화하러 오셨습니까』하고 물어왔지만 나는 단호히 『나는 교화승으로서가 아니라 한때 사형수를 살려준 보은의 인사를 하러왔다』고 말해주었다.
경황이 없었을 때인데도 전씨는 허름한 바지에 스웨터와 조끼를 걸친 모습으로, 4평 안팎의 방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86년 내가 교정대상을 받고 청와대를 예방해 만난 적이 있어 구면이었다. 맞절을 한 후 내가 『산사생활은 어떠시냐』고 묻자 전씨는 『마치 고향에 온 것같이 편하다』고 했다. 『몇 년전 한 재일교포 사형수를 감형시켜 주어 고맙다고 하자 인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새삼 밝은 표정을 지었다. 전대통령이 83년 일본방문 때 유일하게 무기로 감형시킨 손의 얘기를 하면서 손의 노모는 아들을 위해 매일 단식기도 하다 85년 숨을 거두었다고 하자 애석해하기도 했다.
얼굴이 환히 펴진 전씨와 나는 갑자기 아주 마음이 가깝게 되었다. 내가 금강경의 「일 절유위법 여몽환포영」얘기를 하면서『인생은 한마당의 꿈이요, 환상이요, 물거품이요, 그림자』라고 했더니 전씨도『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조봉암씨가 형장에서 『나의 죽음으로 정치적 살인극이 마감되길 바란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했다는 얘기를 하자 전씨도 『나 하나의 죽음으로 다음 대통령이 잘 되고 나라가 평온하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날 나는 전씨에게 내가 지니고 있던 순금 지장보살상을 선물했다. 『지옥문 앞에서 지옥의 중생이 다 구제될 때까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한 분인데 이 지장보살의 도움으로 고통이 멈춰지기를 바란다』고 하자 『고맙다』며 받았다. 나올 때 방문이 잘 안 열리자 전씨는 『이 방 주인은 접니다』하면서 문을 발로 뻥 차니 열렸다. 우리는 함께 박장대소 했다. 그 한달 후, 그리고 이듬해 나는 한번 더 그를 만났다.
전씨는 90년말 연희동으로 돌아와 일상적인 시민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가 본래 자리로 돌아왔으니 오히려 만나보는 것이 번거로울 것 같아 아직 전씨를 찾지 않고 있다. 다만 산사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한 소탈한 인간의 인상만 내 가슴에 묻어두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