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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누구 돈인가/최철주(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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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즘 정치인들의 돈 주무르는 스타일을 보면 갈수록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거때마다 겪는 일이기도 하지만 표를 위해서라면 무슨 돈이라도 쓰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지방정부 예산이든 중앙정부 것이든 금일봉 나눠주듯 서로 자기 앞가림 하는 사업으로 배정하려는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정기국회는 말이 예산국회지,그 운명은 불을 보듯 빤하다. 예산심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기나 할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당이 어느 항목의 예산을 뭉텅 깎아내고 그 대신 지역사업으로 얼마나 가져갈까가 최대관심사다.
○아리송한 허위신고
돈에 관한 한 그 유통경로를 따질 겨를이 없고 또 결코 따지고자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들은 내심 실명제를 매우 두려워 하고 있다. 어느 당이든 그 제도를 실시해야 한다고 백여번을 되뇌고서도 뒤에 가서 하는 행동은 딴판이다. 민자당은 서울시지부 금고에서 감쪽같이 없어진 4억7천만원에 대해 두번이나 거짓말을 했다. 8천만원을 도난당했다고 했다가 다시 4억4천만원으로 바꿨다. 아무리 대통령이나 총재가 내린 추석격려금이라 한들 공당이 그처럼 당당하게 허위신고를 할줄은 몰랐다.
민주당이나 국민당도 금고단속을 하고 있다고 한다. 민자당과 같은 거액 도난사건이 났다면 어떤 형태의 신고가 이뤄졌을까. 범인이 훔쳐간 액수를 줄여 신고해야 할만큼 껄끄러운 심사가 될 것이다. 집권여당의 금고에 있었던 거액이 무슨 돈 이길래 쉬쉬 하는 것일까. 「도대체 그게 어디서 나온 돈인가」 하는 강한 궁금증을 억제할 수가 없다.
한준수 전연기군수가 이종국 전충남지사로부터 건네받은 1천만원 수표의 성격과 유통경로 등 어느 것도 풀리지 않았다. 수사기관이 으레 해온 관례에 따라,혹은 현행 실명법에 따라 해당 금융기관에 조회만 해보면 돈의 흐름이 좍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만은 예금자 등의 비밀을 보호해야 한다는 관계법의 취지를 충분히 살리려는 「준법정신」이 발휘되고 있다.
○정 한계넘은 금일봉
역시 돈은 모든 것을 말하고,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든다. 그것은 특히 정치인들이 유용하게 들먹이는 철학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행동의 산물인 금일봉이 오가는 빈도는 이미 정표시의 한계를 넘어서고 말았다. 이제는 「격려금」「지원금」이라는 말도 적합하지가 않다. 더욱이 금일봉의 행동양식이 선심예산 편성형태로 계속 변질되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할만한 일이다.
작년 여름 국회에서 추경예산 심의때 느닷없이 전북의 새만금 간척사업비 2백억원이 끼여들어간 것은 노태우­김대중 회담의 결과였다.
이 프로젝트는 12년 전부터 경제성 여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져왔던 문제의 사업이었다.
이제 내년도 예산편성과 관련한 당정협의 과정에서 민자당이 실력자와 예산결산위원들 뿐만 아니라 최근에 영입한 무소속 의원들의 입지를 살려주기 위해 선심성 예산을 짜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어느 의원의 선거구를 통과하는 고속도로 사업비는 크게 증액시키고 어느곳에는 누구 얼굴을 보아서 공공기관 건설비를 우선 배정한다는 것 등이다. 민자당이 제1당으로서 이런식의 프리미엄을 늘려 나간다면 민주당이나 국민당도 틀림없이 그 나름의 파이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생색내기 예산흥정
이런 흥정은 으레 관련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논외로 하고 있다. 바로 작년에도 그랬다. 여야간의 정치적 거래로 예산삭감 규모부터 정해놓고 지역사업 끼워넣기로 타협을 보았다. 대선을 앞둔 지금,정치권의 예산 칼질에 심히 두려움을 느낀다. 그들은 원구성도 아직 못하고 예산 공부도 안한 상태에서 막판에 거친 작두질로 나라살림을 짤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국민은 「그게 누구 돈인가」를 따져야 하고 관리들은 과천 종합청사의 불빛을 꺼서는 안된다. 유권자나 관리가 그처럼 정치인을 길들이는 방법 이외에 또 무슨 선택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겠는가. 일부 지방의회에서 조차 선심사업이나 의원 여비증액 등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정치후진국을 못벗어난 것 같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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