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공산권의 개혁물결>㉻ 구종서 <본사논설위원> 인력·자본 달려 힘겨운 ″경제대장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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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중국은 이미 국가주도 하에 자본주의화 개혁을 선도하고있다. 베트남이 그 뒤를 따르고 라오스가 베트남을 뒤쫓고 있다. 북한은 아직도 모색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결국 이와 비슷한 방식을 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개혁노선은 서구의 자본주의 초기단계에서 행해진 절대주의 모델 내지 한국과 대만이 공업화과정에서 보여준 신흥공업국가들의 개발독재모델과 비슷하다.
이와는 달리 민주화와 공업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몽고는 더 많은 부담을 안고 있다. 새로이 민주화된 지금의 정치체제로는 근대화에 필요한 강력한 국가리더십을 창출하기 어렵고 행정효율·경영기술도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식료품·일용품의 기근과 높은 인플레로 인한 민생난은 시급하고도 가시적인 개혁성과를 고대하고 있다. 이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몽고의 신생 민주체제 존립자체가 위태로워 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몽고도 정치·경제의 동시발전을 포기하고 국가권력을 독재화하여 경제개발에 주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곧 중국·베트남·라오스·북한이 걷고 있는 개혁모델로의 합류다. 이래서 아시아공산국가 모두가 결국은 개발독재를 지향할 것으로 보인다.
개발독재의 존립명분은 경제개발이다. 따라서 경제에 실패하면 존립근거를 잃어 붕괴되지 않을 수 없다. 80년대 남미 군사권위주의 정권들의 도미노적 붕괴가 그 예다. 반면 경제발전에 성공하면 국민의 의식수준이 향상되고 자유화·민주화에 대한 욕구도 상승된다. 이런 사회에서 권위주의독재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그것은 박정희의 비극적인 종말에서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는 경제개발에서 기적적인 성공을 거두어 한국을 전근대적인 농경사회에서 근대적인 산업사회로 발전시킨 위업을 이룩했다. 그러나 경제발전에 따른 국민의 민주화요구를 거부하다 결국은 비명에 갔다.
중국은 이미 이런 종류의 시련을 경험하고 있다. 북경정권은 지식인·학생의 자유화·민주화시위를 89년 천안문학살로 진압했다. 그것은 곧 우리의 광주사태였다. 광주가 그러했듯이 천안문사건도 유혈진압이 해결책은 아니다.
중국이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난제는 지방주의·할거주의의 방지다. 중국은 경제를 분권하면서 행정기관과 군사부대에 기업경영권을 주어 필요경비를 자체 조달하도록 권장했다.
그 결과 관청과 부대가 설립한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이미 재벌적 그룹 집단으로 성장한 것도 있다. 북경시정부의 북진집단도 그 하나다. 중앙의 통제력은 약화되고 지방과 부대의 독립성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경향이 다민족국가인 소련·유고·체코의 연방해체에 자극되어 소수민족의 분리운동이나 지방주의와 결합되면 복합국가의 모순은 증폭된다.
북한은 더욱 심각하다. 북한경제가 조속히 개선되지 않으면 인민들은 더 이상 참기 어렵다. 그렇다고 외부세계에 사회를 개방하고 통치의 고삐를 늦춘다면 지배체제가 위험하다.
아시아공산국가 중 북한체제가 가장 경직되고 취약하다. 그 때문에 개발독재로의 전환도 쉽지 않다. 성공적인 한국의 존재도 북한의 입장을 다른 공산국가들보다 어렵게 하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민주화와 산업화의 병행적 발전을 요구한다. 그러나 근대화에 필수적인 기술자·전문가 등 인적 능력과 자본·설비 등 물적 자원, 정치·사회적 환경조건이 모두 미비 돼 있다. 그것들이 쉽게 해결될 전망도 없다. 이것이 오늘날 아시아공산권이 맞고있는 딜레마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는 아시아공산주의의 탈 공산주의 실험은 불안한 항해의 연속이다. 그것은 공산화보다 더 어려운 장정일지 모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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