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 판소리 영화『서편제』크랭크인-이청준 소설『남도사람』영상에 옮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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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임권택 감독이 판소리영화『서편제』를 오는 22일 지리산자락 섬진강변에서 크랭크인한다.
제작자는『아제아제 바라아제』이래 호흡을 맞춰온 태흥영화 이태원씨.
서편제란 조선말기의 명창 박유전의 법제를 따라 부르는 창법의 유파로 음색이 곱고 애절한데 보성·나주 등 섬진강 서쪽에서 성해 서편제로 이름 붙여졌다.
섬진강 동쪽 구례·순창 등에서 성했던 호방·청담한 창법의 송흥록 유파는 동편제로 불린다.
영화『서편제』는 이청준씨의 연작소설『남도사람』중 「서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취했다.
임 감독은 78년 무렵 우연히 이씨의 『남도사람』을 읽고 영화화하고픈 강한 충동을 느꼈었다.
그 자신 남도에서 고난에 찬 소년기를 보냈던 임 감독은 남도 민중의 한의 육음을 남도의 자연과 소리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판소리를 아는 마땅한 배우도 없고 해서 이 계획을 묻어뒀다.
14년여가 지난 지금『서편제』영화화가 실현된 것은 임 감독의 우연한TV시청이 계기가 됐다.
지난봄 남원「춘향제」에서 미스춘향 진으로 뽑힌 오정해양(21)이 멋지게 창을 부르는 것을 본 것.
임 감독은 무릎을 치며 기억 속에서 『서편제』를 되살려냈다.
수소문 끝에 지난달 연극『하늘천따지』에서 북잡이역을 맡아 공연중인 오 양을 만났다.
알고 보니 오 양은 목포출신에 국악예고를 나오고 중앙대 한국음악과4학년 재학 중으로 중·고 때부터 각종 판소리대회에서 입상한데다 인간문화재 김소희씨로부터『춘향가』를 이수 받은 진짜 소리꾼이었다.
임 감독은 바로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가는 한편 판소리를 배운 배우 김명곤씨를 불러들였다. 시나리오완성이 아직 안됐지만 다음주 촬영에 들어가는 것은 여름 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서편제』는 아버지가 다른 남매, 떠돌이인 오빠와 주막 여인인 누이동생이 따로 소리인생으로 흐르다 남매인줄 모른 채 짧게 여울진 하룻밤 만남을 통해 소리로써 화해와 해원, 그리고 교합하는「소리의 신화」를 그리게 된다.
임 감독은『남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떠도는 사람들의 한이 어떻게 판소리에 녹아들어 해한과 구원의 차원으로 승화되는가에 연출 초점을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임 감독은 또「판소리 때문에 어릴 때 장님이 된 누이동생과 떠돌이가 된 오빠라는 비극적 상황을 같은 판소리로 한을 씻어내는 방법이 관객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지는가」가 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편제』는 멋지게 출발했다가 엉거주춤 막을 내린『장군의 아들』시리즈의 여진을 털어 내는 첫 작품이란 의미를 지닌다.
올 초부터 매달린『태백산맥』은 워낙 대작이라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아 내년 중반께나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갑자기 다른 사람도 아닌 임 감독이 찾아와『서편제』를 영화화하겠다하고, 또 적지 않은 판권료도 덤으로 받은 이청준씨는 기분이 좋아 낮술을 돌렸다는 후문이다.

<이헌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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