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남용 막아야 할 주민소환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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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주민소환, 그 무시무시한 민중의 칼날이 주민소환법이 발효된 5월 25일부터 전국을 요동치게 하고 있다. 최근 외유성 출장으로 물의를 일으킨 서울의 구청장들이나 무리한 정책 집행으로 각종 민원을 불러일으켰던 다수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제1호 대상자로 경합 중(?)이라고 한다. 최근 진수된 이지스함의 활동 중심이 될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서도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은 소환 대상자로 천거(?)되고 있다고 한다. 공용 화장장이나 쓰레기 소각장과 같은 소위 님비(NIMBY) 시설을 유치하기로 한 자치단체장들 또한 주민소환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2007년 7월 1일은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의 임기 개시 1년이 경과하는 날, 즉 역사상 최초로 주민소환이 시작되는 날이다.

지방자치법은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의 임기를 4년으로 보장하고 있다. 물론 임기제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유죄 판결을 통해 임기는 짧아질 수 있다. 하지만 주민소환제가 실시되면 언제든지 옷을 벗을 수 있다. 법을 위반하지 않아도, 비리를 저지르지 않아도, 직권을 남용하지 않아도 소환될 수 있다. 바로 유권자의 믿음과 신뢰, 즉 지지를 잃으면 말이다.

현행 주민소환법은 소환 사유에 관해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주민소환법은 유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하고 투표자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그날로 대표는 물러나도록 하고 있다. 최근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40~50%에 이르고 있는 걸 감안한다면 결과적으로 지역 유권자의 20% 찬성만 있으면 소환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참으로 간편한 절차가 아닐 수 없다.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30%에 가까운 찬성이 필요하지만 대표에서 쫓겨나는 데는 20%의 반대면 충분하니 말이다.

통일과 함께 주민소환제를 도입한 독일의 경우 실시한 지 3년 이내에 전체 지방자치단체장의 10% 이상이 주민소환 청구 대상이 됐고, 그중 절반에 가까운 자치단체장이 소환됐다. 그러면서 주민소환제에 대대적인 입법적 수정이 가해졌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는 상호 견제하는 것이 민주주의와 대표제 원리에 입각한 통제와 균형의 전형이다. 주민이 이에 통제 세력으로 참가하는 경우에도 나머지 두 당사자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 우리와 유사한 독일의 주민소환법제는 주민소환 청구 절차에서 지방의회가 일정한 역할을 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소환투표의 비용을 소환 청구자나 소환 대상자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처럼 주민소환이 동시에 새로운 대표의 선출 과정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의 법처럼 소환 대상자에게 선거운동에 비견되는 '소환 방지 캠페인 기간'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경우도 없다.

소환은 선출된 대표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와 정치공동체의 보호를 위해 유권자로부터 내려지는 최후의 결단이자 대의민주제의 '비상브레이크(Notbremse)'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소환제에 관한 최초의 논의 역시 주민소환제보다는 국민소환제였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약 국민소환제가 도입되었다면, 지지율 20%를 밑도는 대통령은 어떻게 되었을까? 선진적이며 정당한 정책을 소신 있게 집행했다는 그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소환됐을 것이다. 선거와 소환의 관계는 어찌 보면 결혼과 이혼의 관계와 비슷하다. 이혼 사유의 1위는 '성격 차이'다. '성격 차이'처럼 모호한 이유로 소환되는 대표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주민소환법이 발효되자마자 법 개정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최봉석 동국대 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