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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이쁜 놈, 요 이쁜 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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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면

오대산 두로령에서 두로봉으로 난 길. 거리는 1.6㎞, 시간은 40분이라 표기된 안내도를 슬쩍 보고 오솔길로 첫발을 떼자마자 수풀 더미에서 하얀 방울이 아롱거립니다. 반지르르한 잎을 제쳐보니 새끼손톱보다 작은 몽우리들이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아직 만개하지 않은 은방울 꽃망울입니다. 며칠만 있으면 꽃잎의 가장자리가 바깥으로 말아 올라간 종을 빼다 박은 은방울이 대롱거릴 겁니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온통 샛노란 피나물꽃(上)이 무더기로 피었습니다. 숲 속의 들꽃 정원과 다름없습니다.

고작 몇 발짝 옮기니 금강애기나리(中)가 앙증맞게 하늘거립니다. 게 중 아직 덜 피어난 꽃망울은 잎이 감싸 안았습니다. 마치 강보에 싸인 젖먹이 아기 같습니다.

또 몇 걸음 걸으니 홀아비바람꽃(下)이 바람결을 타며 노닐고 있습니다. 사람 반기듯 하늘 향해 화사하게 꽃받침을 열었습니다.

숲 그늘 짙게 드리운 곳엔 연영초의 하얀 꽃이 소담하게 빛을 냅니다. 어두운 밤하늘의 달마냥 숲 그늘에 덩그러니 홀로 환합니다.

숲 속의 꽃들은 참 각양각색입니다. 생김이나 색깔과 크기도 다르고 피고 지는 시기도 같지 않습니다만 이놈들을 제대로 보려면 반드시 몸을 숙여야 한다는 사실만은 같습니다. 엎드려 기고 쪼그려 걷다 보니 두어 시간이면 넉넉히 다녀 올 길이 무려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웬만한 야생화 전문가가 아니라면 수많은 들꽃의 이름을 다 알 수 없습니다. 비슷한 꽃이라도 잎과 줄기와 꽃은 물론 심지어 뿌리의 모양에 따라 그 이름이 다릅니다. 일단 찍은 뒤 도감에서 찾아보거나 전문가에게 감수를 받으려면 잎과 꽃의 앞.뒷면과 줄기. 턱잎 등의 특징을 따로 찍어 두어야 합니다.

(들꽃 감수: 이동혁)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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