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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화 세계무대 "우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국내 관객에게도 잘 알려진 중국의 장예모감독이 연출한『귀주이야기』가 지난 13일 폐막된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 중국 영화가 세계영화계에서 입지를 확실히 다지고 있다.
80년대 중반부터 세계 영화계에 적극적으로 등장한 중국영화는 등장직후부터 지금까지 로카르노·몬트리올·베를린·칸·아카데미 등 세계 유수영화제 본선에 계속 진출, 세계 영화계로 하여금 다소 놀란듯한 표정으로 중국 영화의 독특한 양식을 지켜보게 했다.
이른바 「제5세대」로 불리는 감독군이 주도하는 이들 영화 중 오천명감독의 『옛 우물』은 87년 동경영화제 그랑프리, 진개가감독은『황색대지』로 84년 로카르노 영화제 은상과 『대열병』으로 85년 몬트리올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으며 이번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장예모감독은 88년 베를린영화제에서 『붉은 수수밭』으로 역시 그랑프리를 수상한 바 있어 세계적인 감독으로서의 명성을 더욱 굳히게 됐다.
이같은 중국영화의 활약은 한국 영화계에 상당한 자극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영화사를 시기적으로 나눠 이름 붙여진 「제5세대」감독군을 대표하는 이들은 앞서의 장예모·진개가 외에 장군쇠·황건신·전장장·오자우·장택명 등이다.
1950년을 전후해 태어난 이들은 그러나 앞 세대의 감독들과는 현저히 다른 시각·양식으로 중국과 중국 인민을 카메라에 담아냄으로써 그들 스스로는 「제5세대」라는 표현이 단순한 시대구분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세계영화계는 이 「제5세대」를 60년대 프랑스의 「누벨바그」운동처럼 영화사에 독립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제5세대」감독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이들이 중국 근·현대사의 교조적 체제와는 냉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면서 이른바 주의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소년기를 문화혁명의 광기어린 분위기 속에서 홍위병으로 보낸 뼈저린 체험을 겪은 이들은 그 때문에 중국의 과거, 특히 경직된 현대사에 대해 본능적인 저항감을 품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이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과 그를 실현하기 위한 자유 의지를 솔직·대담하게 그리고 있다.
세계 영화계가 이들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이러한 연출 의도를 감독들 나름대로 각자의 표현양식에 따라 매우 충실하게 계발하고 있다는데 있다.
「제5세대」는 앞선 세대들이 문화혁명에 대한 피해의식에 젖어 사진감독이『부용진』에서 그렸던 것처럼 감상적 엘러드라마에젖지도 않았으며,외국의 연출기법을 참고는 하되 결코 베끼지 않는 독립적인 기법을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가령 진개가는 황량한 변경에서 중국의 오늘을 찾아보는 상징주의적 형식에 매달리고, 오자우는 중국 현대사를 도가적 세계관으로 파악하려 애쓴다.
장예모는 보다 할리우드적인 방법으로 나아가며, 전장장은 즉 물적 엄격함으로 중국의 사회구조를 들여다보고 있다.
「제5세대」영화는 이 같은 치열한 비판의식 때문에 정작 중국안에서는 상영금지조치가 종종 내려지고 있다.
중국 영화의 대두에 대해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는 『「제5세대」의 영화가 주제·형식면에서 새로운 것임은 틀림 없으나 서구의 영화제와 평론가를 겨냥한 영화로 일관하게 되변 형식주의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이헌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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