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에 빠진 삼성 … '생명' 상장하면 '전자'가 M&A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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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건 항소심 판결 이후 삼성이 고민에 빠졌다. 이번 판결이 삼성이 도모하는 새로운 지배구조의 시발점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에버랜드가 발행한 CB를 인수한 뒤 나중에 주식으로 전환해 삼성 지배구조의 핵심인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됐다. 물론 이번 판결은 삼성의 지배구조에 직접적 영향은 없다. 재판부가 '에버랜드 CB 발행을 결정한 이사회는 정족수 미달이어서 무효'라고 판결했지만, 법적으로 발행된 CB를 취소하기엔 시간이 너무 지났기 때문이다. 다만 삼성 변호인 측이 대법원에 상고할 뜻을 밝혀 최종 판단은 남아 있다.

◆ 지배구조에 영향은 없어=삼성은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 등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로 짜여 있다<그래픽 참조>. CB 발행이 무효라는 이번 법원 판결이 났어도 이미 발행된 CB는 취소할 수 없다. 취소하려면 발행 6개월 안에 주주 등이 소송을 내야 하는데 시효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 하지만 삼성은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삼성이 지배구조를 바꾸는 모범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며 '압력성 훈수'를 했다. 하지만 재계와 삼성그룹 안팎에서는 기업의 지배구조는 개별 기업과 주주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배구조의 좋고 나쁨은 경영 결과가 말해주는 것이지, 획일화된 기준에 따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삼성생명 상장도 딜레마=삼성생명 상장 시기도 삼성의 고민이다. 삼성은 옛 삼성자동차 부채를 놓고 채권단과 진행 중인 소송 때문에 삼성생명을 상장해야 할 판이다. 삼성차 채권단은 2005년 12월 삼성을 상대로 약 5조원을 내라는 소송을 냈다. 1999년 6월 이건희 회장이 삼성차 부실에 도의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삼성생명 주식 350만 주를 내놓았지만, 이것이 현금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송을 낸 것이다. 삼성생명을 상장하면 주식을 팔 수 있어 소송이 원만히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상장을 하면 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가 된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현행법상 기업의 자산 중 금융회사 주식이 전체의 50%를 넘으면 금융지주회사가 된다.

삼성생명이 상장되면 주당 약 75만원 선에서 거래될 것으로 예상돼 386만 주(19.3%)를 가진 에버랜드는 금융지주회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법에 따라 자회사인 삼성생명은 비금융사 지분을 가질 수 없게 돼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 7.3%를 2년 안에 처분해야 한다. 자연히 순환출자는 풀리지만, 당장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약해져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험에 노출된다는 게 삼성의 우려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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