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21세기 신냉전을 우려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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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러시아가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제 모스크바 북쪽 800㎞ 지점에 있는 플레세츠크 우주기지에서 발사된 R-24 미사일이 동쪽으로 5500㎞를 날아가 캄차카 반도에 설치된 목표물에 정확하게 명중했다는 것이다. 최대 10개의 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이 미사일은 적(敵)의 어떤 미사일 방어(MD)시스템도 뚫을 수 있는 최신형 ICBM이라는 것이 러시아 측 발표다. 미국과 러시아의 군비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21세기의 신(新)냉전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먼저 빌미를 제공한 측은 미국이다. 미국은 재작년부터 폴란드와 체코에 요격 미사일 발사대와 레이더로 이루어진 MD시스템 구축을 추진해 왔다. 이란 등 '불량 국가'의 잠재적 핵 개발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布石)일 뿐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미국은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유럽의 전략적 균형에 대한 위협이라며 강력히 반발해 왔다.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로 들어오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러시아가 옛 소련의 영광 재현을 노리며 군비 강화에 주력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러시아는 올해 국방 예산을 310억 달러로 전년보다 38%나 늘리면서 그중 110억 달러를 군장비 개선에 배정했다. 절박성이 의심스러운 MD시스템의 동유럽 배치를 추진함으로써 미국은 러시아에 군비를 강화할 수 있는 핑계를 제공했다는 것이 우리의 시각이다.

미국의 방패를 뚫는 새로운 창을 러시아가 개발함으로써 미국은 또다시 러시아의 창을 무력화하기 위한 신무기 개발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러시아가 군비 경쟁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세계평화에 보탬이 되지 않는 소모적 군비경쟁을 중단하고,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의 과감한 이행을 통해 핵 군축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불량 국가들의 일탈(逸脫)을 막고, 핵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