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분양가 상한제 왜 하는 건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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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앞으로 집값 싸지겠네. 여태껏 우리집 없이도 잘 살았으니 이왕이면 분양가가 확 내려가면 그때 집을 사야겠다."

요즘 들어 이런 말씀을 하시는 틴틴 부모님들이 꽤 계실 거예요. 맞습니다. 앞으로 집값,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파트 분양가가 지금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라고요? 자동차든 아이스크림이든 시간이 갈수록 값이 오르기만 하지 내리는 건 아직 못 봤다고요? 그것도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물가가 내리기보다는 오르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상품 가격은 해가 갈수록 더 비싸졌지요. 하지만 아파트 분양가는 내려갈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정부가 일정 기준 이상으론 돈을 더 받지 못하도록 가격을 제한하는 제도, 이른바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기로 했기 때문이지요. '싼 게 비지떡' 아니냐고요? 글쎄요. 장사하는 사람들이 밑지고 물건 팔 리가 없다는 말을 믿는다면 그럴 가능성이 크지요.

◆갈수록 비싸지는 집값=똑같은 아파트라도 어떤 지역에서 짓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겁니다. 따라서 건설업체는 인기가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선 분양가를 높이고, 그렇지 못한 곳에선 가격을 낮춰 전체적으로 일정한 수익을 유지하는 전략을 씁니다. 그런데 한번 높아진 집값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은 지 10년 된 서울 강남의 A아파트 가격이 평당 1000만원이고, B건설업체는 그 아파트 바로 옆 공터에 새 아파트를 짓기로 했다고 생각해 보지요. 이 경우 B사는 실제 건축비는 무시한 채 분양가를 1000만원 이상 붙일 가능성이 큽니다. 새 집인 데다 시설도 더 좋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죠. 그래서 B사는 평당 가격을 1200만원으로 정했습니다.

이번에는 A아파트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 아파트가 B사 아파트보다 주변환경이나 교통이 더 좋은데 가격이 더 싸다는 건 말도 안돼"라고요. 그래서 아파트 주민들은 평당 1200만원 이상에는 집을 팔지 않기로 결의했고 실제로 1200만원보다 비싸게 집을 팔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B사 아파트 주민들은 "지은 지 10년 된 아파트와 새 집을 똑같은 가격에 팔 순 없지"라며 팔고자 하는 가격을 더 높입니다.

이런 와중에 C사가 새 아파트를 짓기로 했다면 이 회사는 분양가를 얼마에 결정할까요. 답은 뻔하겠지요. 결국 비싼 분양가는 주변 집값을 끌어올리고, 집값 상승은 다시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겁니다.

◆분양가 상한제로 집값 낮추기=이럴 경우 정부가 쉽게 떠올리는 정책이 바로 가격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정부가 B사에 "아파트 분양가를 1000만원 이상 받지 말라"고 명령을 하는 것이죠. 분양가 상한제는 바로 이런 가격 통제의 하나입니다.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면 분양가를 구성하는 땅값.건축비.가산비를 일정 수준 이상은 받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분양가는 당연히 낮아질 수밖에 없겠죠.

이 가운데 땅값이 분양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선 분양가의 70%가 땅값인 곳도 등장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땅값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A회사가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죠. "우리가 실제로 땅을 산 가격은 평당 600만원이다. 500만원밖에 인정해 주지 않으면 우린 집 못 짓는다. 못 믿겠다면 증거를 보여주겠다."

그래서 정부는 애초 감정가격만 땅값으로 인정해 주기로 했다가 증거(부동산등기부에 적힌 가격)를 대는 업체에 한해선 실제로 산 가격을 인정해 주기로 했답니다. 하지만 업체가 주장하는 대로 다 인정해 주면 분양가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비싸게 땅을 샀더라도 감정가와 가산비를 더한 금액의 120%까지만 인정해 주기로 했지요. 감정가+가산비가 평당 100만원으로 결정됐다면 실제 매입가격이 평당 150만원이라 할지라도 120만원만 땅값으로 봐주겠다는 겁니다.

건축비도 정부가 기준 가격을 정해 줍니다. 오는 7월에 결정이 되는데 시멘트 등 각종 재료 가격과 집 짓는 사람들의 급여 등을 모두 고려해 평당 300만원 하는 식으로 결정이 됩니다. 하지만 서울의 시멘트 값은 강원도 고성의 시멘트 값보다 비쌀 수 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장이 그 지역의 물가 수준을 생각해 정부가 정한 가격에서 5%를 높일 수도, 낮출 수도 있게 했습니다.

아파트 조경비, 놀이터 등 각종 시설비 등을 의미하는 가산비도 비슷한 방법으로 정부가 올해 7월까지 결정합니다. 물론 물가가 해마다 오를 수도 있고 낮아질 수도 있기 때문에 건축비와 가산비는 물가 수준에 따라 매년 조금씩 차이가 있겠죠.

◆분양가 싸진 만큼 규제도 강화=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면 분양가가 인위적으로 낮아지게 됩니다. 심지어 이미 지어진 주변 아파트보다 새 집이 더 싸질 수도 있겠죠. 이렇게 되면 싸게 분양받은 아파트를 재빨리 비싼 가격에 넘기려는 사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이가 많아지면 집값은 계속 올라가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한 효과가 적어지겠죠.

그래서 정부는 전매제한 기간이란 걸 뒀답니다. 이 기간 동안은 분양받은 아파트를 팔지 말란 것이죠. 이번에 분양가 상한제를 명시한 주택법과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전매기간이 좀 더 길어졌습니다. 집을 싸게 샀으니 그 정도의 불이익은 감수하란 얘기인 셈이죠.

또 대한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이 집을 짓는 공공택지에서 전용 면적 25.7평 초과 주택에만 적용되던 채권입찰제도 민간의 전용 25.7평 초과 주택에도 시행키로 했답니다. 분양가 상한제로 인해 집값이 너무 싸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분양자에게 채권을 강제로 팔아 다시 집값을 올리는 효과를 내기 위한 것이지요. 채권입찰제를 시행하더라도 전체 분양가는 주변 시세의 80%로 정해지기 때문에 여전히 분양가는 주변 아파트보다 낮다는 게 정부의 설명입니다.

김준현 기자

마이너스 옵션제란
바닥재·벽지 등 시공 않은 상태로 분양
실내공사 비용만큼 분양가 깎아줘요

분양가가 많이 오른 이유 중에 하나는 최근 들어 아파트가 많이 고급화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바닥재는 원목이나 대리석, 벽지는 친환경 실크벽지, 창문은 고급 시스템 창호 등 고급 소재를 사용해 집을 짓는 식이죠. 돈이 많이 들었으니 업체로선 당연히 분양가를 높일 겁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정부는 소재의 고급화와 이를 통한 분양가 상승을 막기 위해 '마이너스 옵션제'란 걸 도입하도록 했습니다. 바닥재.벽지.조명기구 등 선택사항(옵션)을 시공하지 않는 상태(마이너스 상태)에서 분양하게 하는 것이죠. 이런 옵션이 빠졌으니 분양가는 당연히 내려가겠죠. 9월부터는 아파트 분양신청 때 청약자는 마이너스 옵션을 할 것인지, 아니면 이런 옵션들이 다 갖춰진 표준형을 선택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이너스 옵션을 놓고도 말이 많습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마이너스 옵션제를 통한 분양가 인하는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옵션을 줄여 분양가가 내린 것은 진정한 의미의 분양가 인하는 아니라는 얘기죠. 오히려 소비자가 최종적으로 부담해야 할 비용은 더 높아질 것이란 지적도 많습니다. 지금은 건설업체가 바닥재.벽지 등을 한꺼번에 사서 시공하기 때문에 재료비나 인건비를 싸게 할 수 있지만 개별적으로 이런 공사를 하면 돈이 더 든다는 겁니다.

하지만 장점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 전 바닥재나 벽지, 심지어 주방기구까지 몽땅 교체하곤 했습니다. 도무지 회사 측이 선정한 제품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죠. 마이너스 옵션제가 시행되면 이런 식으로 낭비되는 비용은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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