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충돌
95년 LG-한화전. LG 선발 이상훈이 7회까지 노히트노런으로 호투하고 있었고, 타석에는 18경기 연속안타를 기록 중인 한화 박지상이 들어섰다. 둘 중 누군가의 기록은 깨져야 할 상황이었다. 모두가 긴장한 순간 박지상의 잘 맞은 타구는 유격수 유지현을 향했다. 공은 글러브를 맞고 뒤로 흘렀고, 유지현은 중심을 잃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고민이 시작됐다. 실책이냐 안타냐, 이상훈의 노히트노런이 깨지느냐, 박지상의 연속 안타가 깨지느냐가 걸린 문제였다. 마냥 시간을 끌 수도 없었다. 벌써 타석에는 다음 타자가 들어서고 있었다. 고심 끝에 안타로 기록했다. 윤 팀장은 "기록을 하면서 그토록 고민을 했던 적이 없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1000번째 경기
숱한 대기록의 현장에 있었던 윤 팀장이지만 노히트노런만은 직접 본 적이 없다. 2000년, 그가 정확히 1000번째 경기를 기록하던 날도 그랬다. 현대와 해태(현 KIA)의 경기. 현대 선발 김수경은 9회 1사까지 노히트노런을 이어가고 있었다. 윤 팀장은 '드디어 노히트노런을 보는구나'하고 생각했다. 타석에는 해태 외국인 타자 타바레스가 나왔다. 스코어도 11-0으로 현대가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이라 큰 것 한방을 노릴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타바레스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기습번트로 1루를 밟았다. 김수경의 노히트노런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조용한 기록실의 불청객들
시끌벅적한 야구장에서 가장 조용한 곳은 기록실이다. 2명의 기록원이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경기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 선수들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를 모두 기록한다. 윤 팀장은 "한 명은 손으로 작성하고, 다른 한 명은 전산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대화가 오갈 틈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가끔 시끄러울 때가 있다. 95년, 양준혁(삼성)은 자신의 안타성 타구가 실책으로 기록되자 윤 팀장을 찾아와 항의를 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양준혁은 기록실의 문을 발로 차 구멍을 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선수 가족들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선수가 다음날 직접 사과를 하러 나타난 적도 있다고 한다. 윤 팀장은 "야구에 대한 애정으로 일어난 일들이라서 끝까지 얼굴을 붉히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장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