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의 여왕' 알랭 들롱의 키스 받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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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전설적 미남 배우 알랭 들롱(右)이 28일 오전(한국시간) 칸영화제 시상식에서 전도연의 뺨에 다정하게 입을 맞추고 있다. 이날 여우주연상 시상자로 단상에 오른 들롱은 전도연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칸 AFP=연합뉴스]

28일 오전 2시30분(현지시간 27일 오후 7시30분) 프랑스 남부 도시 칸 해변의 뤼미에르 대극장.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영화 22편이 경합한 제60회 칸영화제의 시상식이 시작됐다. 30분쯤 흘렀다. 여우주연상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앞으로 남은 건 심사위원대상과 황금종려상. '세기의 미남' 알랭 들롱(72)이 시상자 자격으로 무대에 올랐다. 1992년 자신이 출연한 영화 '카사노바' 이후 15년 만에 다시 칸에 나타난 그다.

사회자 다이앤 크루거(독일 배우)로부터 "여자를 사랑한 남자"로 소개된 들롱은 제인 폰다 등 함께 출연했던 여배우들을 추억하며 "여배우가 없다면 나는 그림자에 불과할 것"이라고 객석에 인사했다. 그가 여우주연상 수상자 이름을 요청하자 심사위원장인 스티븐 프리어즈(영국 감독)가 서툰 한국어로 "미-량 존-도-연"이라고 대답했다. 객석에서 환호가 일었다.

전도연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가 무대에 오르자 들롱은 가벼운 입맞춤으로 '칸의 새 여왕'을 축하했다.

전도연은 "봉수아(프랑스 저녁인사)"로 입을 열었다. 이어 수상 소감을 밝혔다. "아…믿기지가 않아요. 훌륭한 작품들에서 열연한 여배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그 배우들을 대신해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밀양(密陽.Secret Sunshine)'에서 함께한 감독과 동료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저 혼자는 불가능했을 일을 이창동 감독님이 가능하게 하셨어요. 송강호씨, 강호 오빠 덕분에 신애('밀양'의 주인공)라는 인물이 완벽해진 것 같습니다."

'충무로의 배우' 전도연이 '세계의 배우'로 등극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한국 배우가 세계 3대 영화제(칸.베를린.베니스)의 '여신'에 오른 건 '씨받이'(87년 베니스)의 강수연 이후 20년 만이다.

전도연의 수상은 영화제 내내 예견됐다. AP.로이터.AFP 등 외신들은 '밀양'에서 보여준 그의 탁월한 연기에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전도연은 그들의 예상에 보답했다. 뉴욕 타임스는 28일 칸 결산기사에서 "올 칸에서는 유난히 강한 여성들의 경연이 눈에 띄었다. 전도연이 슬픔에 가득 잠긴 여인의 분노를 절묘하게 연기하며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았다"고 보도했다.

전도연의 별명은 '악바리'다. 연기에 대한 지독한 집념 때문이다. 한국 여배우 중 연기 폭이 가장 넓다는 평이다. 그 작고 근성 있는 배우가 유럽과 미국의 톱스타들을 제압했다. 한국 영화의 또 다른 개가다.

칸=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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