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화 주효… 내실화 기대/올 상반기 6.7% 저성장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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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건설·서비스·소비줄어 「거품」 제거 한몫/정부 지출 억제 설비투자 늘려야 효과
올 상반기 경제성적표는 그동안 정부가 취해온 안정화시책이 일단 일부 부문에서는 효과를 거두기 시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89년이후 건설업과 서비스업의 주도로 비정상적인 성장을 하던 우리 경제의 모습이 3년만에 제조업이 성장을 주도하는 패턴으로 되돌아 옴으로써 한결 경제의 내실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2·4분기의 6% 성장은 수치상으로는 정부가 예상한 7% 수준을 밑돌며 89년 3·4분기 이래 가장 낮은 것이어서 일부에서 또다시 성장론을 들고 나올 우려가 있다. 특히 대통령선거를 불과 3개월여 앞둔 시기에 예상보다 낮은 경제성적표를 놓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가 새로운 쟁점이 될 수도 있으며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한바탕 경기논쟁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90년 4·4대책과 같이 갑가지 성장정책으로 선회하는 어리석음을 또다시 저질러서는 안된다는 경제전문가들의 지적이 많다.
수치상으로 볼때 2·4분기 GNP성장률은 89년말∼90년초 경기논쟁의 시발점이 됐던 89년 3·4분기와 똑같은 것이어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 보면 문제될 게 없다고 한국은행측은 낙관적이고 자신있게 밝히고 있다.
2분기의 낮은 성장은 지난해 15% 정도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많은 부작용을 낳았던 건설업이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데서 비롯됐다. 건설업은 그동안 이상과열 성장을 나타내 경제의 다른 부문에까지 주름살을 지워왔는데,정부의 건축규제 조치로 주택과 상업용건물의 신축이 줄어들면서 성장세가 두드러지게 꺾였다.
그렇다고 건설업 전체가 침체한 것은 아니다. 오피스텔·상가 등 상업용건물과 주거용 건물의 신축만 줄어들었을뿐 공공건설은 도로·철도·상하수도 시설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의 확충에 힘입어 여전히 10%가 넘는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또 국내총생산중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20%가 넘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은은 설명한다.
2분기 6% 성장의 또다른 큰 요인은 민간소비가 급격히 줄어든데서 찾을 수 있다. 「과소비 추방」이라는 외침이 작년까지만 해도 떠들썩했는데 민간소비가 지난해 연간 9.2%의 증가율에서 1·4분기에 8.6%로 낮아지더니,2·4분기엔 7.0%로 더욱 낮아졌다. 한은 스스로도 3개월사이 1.6%포인트에 이르는 급격한 민간소비증가율 하락추세에 놀라고 있을 정도다.
이는 바꿔 말하면 건축규제를 풀고 소비를 부추기면 금방 GNP성장률이 다시 올라간다는 것으로 한은은 그것이 바로 「거품경제」의 실상이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한은은 따라서 상반기 성장률 6.7%가 한은 스스로 여러 경제변수를 고려해 지난해 발표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6.8∼7.2%)에 거의 맞아 들어가는 수준이며 이런 상황이 물가안정(8월까지 소비자물가상승률 4.5%)과 같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총수요관리를 축으로 한 안정정책기조가 흔들림없이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반박하는 논리도 만만치 않다. 우선 제조업의 설비투자 증가율이 4.3%를 기록,88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큰 폭으로 떨어짐으로써 앞으로 경제체질을 강화하고 성장잠재력을 키우는데 문제가 되리란 지적이다. 이에 대해 한은측은 국내총생산중 설비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17.1%로 90∼91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하고 있으나,업계는 우리 경제가 빠른 산업구조 조정을 거치는 단계이므로 이미 물건너간 사양산업에 대한 설비투자는 의미가 없으며 성장산업의 설비투자가 계속 늘어나야 하는데 기계류수입과 국산기계 수중액이 줄어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8월중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선 것도 수출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이런 기계류 등의 수입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민간소비는 줄었지만 정부지출은 지난해 2·4분기보다 0.3%포인트나 늘어난 9.5%의 증가율을 기록,정부의 씀씀이가 헤픈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정부지출은 오히려 늘리면서 이보다 상대적으로 효율성이 큰 민간소비만 억제해서 되겠느냐는 것이다. 민간소비 또한 전체적으로 볼때 증가율은 눈에 띄게 낮아졌지만 내구재와 승용차 구입유지비 등은 늘어나 가계소비지출의 체질개선이 아직 미흡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89∼90년초와 같이 또다시 총체적 위기론을 들먹거리며 갑자기 성장위주의 정책으로 선회해 또다시 엄청난 대가를 치러서도 안되겠지만 현재의 안정화시책을 꾸준히 추진하면서 연구기술개발투자확대,금리하향 안정화유도 등 구석구석에 박혀있는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미시정책을 써야 한다는 경제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를테면 정부 스스로 공언한대로 「작은 정부」로 나가면서 정부지출을 줄여 그만큼 민간부문의 설비투자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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