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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조지상백일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장원>

<시장에서 김여선>
랩으로 포장된
강 건너온 고기 들이
빳빳한 고딕체로
가격표를 붙이면,
아버지
그리운 고향
황소들의 울음소리.
UR 막히는 글자들이
서먹서먹 일어서고.
멍에처럼 각을 진
자정 넘은 TV에선
잡히지
않는 주파수
박테리아로 꿈틀댄다.
경북 안동군 풍산읍 괴정리571

<차상>

<개똥참외 김수엽>
밭 두덕 자갈 숲 한 터
뿌리박고 견디다.
날 빛 채운 주사기로 온 종일 침을 맞고
끝끝내
노란 등불을 켜 올리는 생명 한 점
2.
간섭도 거부한 채
잘 구워진 웃음 하나
어쩌다 뭇사람 틈에 삶의 무게 내보이다
이웃들
푸른 갈채 속에 노란 목숨 사룬다.
전북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530의3

<차하>

<우후 현근우>
맑다, 저 산이 바로 코앞이다
구름은 여윈 발끝을 깃털 속에 접었다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공간이 거기 있다
우러러 치달리는 저 새들의 날개 짓은
거친 생활을 날카로운 부리로 쪼아
모정의 따순 풍경을 둥지로 옮겨 놓는다
사람들의 기둘림은 날 저물며 시작되고
이미 떠난 사람의 그림자 서러워
장미꽃 흐드러진 노을, 서켠으로 지고 있다
가슴도 다 못 풀어 헤친 그 거리를
추억도 발을 내리지 못한 이 계절을
지금은 비도 그친다, 머언 산만 달려온다
떠남은 만남처럼
만남은 철학처럼
생활도 존재도, 저 풍경마저도 묶고
구름은 여윈 발끝을 깃털 속에 접었다
강원도춘천시온의동 금호아파트1동1503호

<입선>

<자갈치 아지매>
어둠이 돌아서고
날 빛 모아 일어서면
눈앞의 절박함들
좌판 위에 늘어 놓고
진한 삶
신명으로 풀어
떠리미요, 떠리미!
가난을 걸러내는
날렵한 손놀림들
세상 밖 어지럼증
온몸으로 밀고 앉아
비릿한
원색 몸부림
시름 한 장 걷어 낸다.
인연 줄에 걸린 식솔
뒷 꼬리에 감추고
여리고 아픈 속내
갯물에 간이 절면
핏발선
굵은 목 울대
별 하나 켜고 있다.
이숙례(부산시 동래구 거제3동 현대아파트103동906호)

<봉숭아>
내 손에 들일 수 없어 빈 하늘에 뿌려 놓았지
산하는 탐스러운데 나의 하늘 피 빛만 어렸네
가슴은 어디 노는지 사는 곳이 외롭다.
누이도 어머님도 늙어버린 고향에는
조카도 딸도 없이 봉숭아 혼자 피어
저녁놀 붉어 질 때마다 아닌 듯이 떠난다.
윤영수<남 진양군 대곡면 광석리 북창226의1>

<무덤>
갈잎이 흔들리는
산 너머에 나가보자
여기 저기 널려 있는
무덤들을 보러 가자
호젓한 영혼들끼리
오순도순 모여 사는 굿.
언젠가는 우리들도
여기 와서 쉴 것을
잘 살고 못사는 것
무엇이 그리 대순가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
바람처럼 갈텐데.
김형진(경남 진주시 신안동394의12)

<차 한잔>
미세한 분말가루
물 속을 걷는다.
잔의 내부에서 흐르는
그윽한 향기,
실핏줄 깊이 깊이
감추어 둔, 따뜻한 감촉.
부드러운 고요앞에
시선을 떨어뜨린다.
입안에 번져가는
크림 빛 차의 속삭임,
순연히 녹아들고 마는,
우아한 저녁한때.
곽신영(남목포시 산정동1202 신안 비치아파트106동 1201호)

<간이역에서>
분명 내 소유물인데도
파기할 수 없는 숙명처럼
보내고 맞이함을
천직으로 여기면서
역사는 증인처럼 서서
말 없이도 다 안다.
떠나 사는 날이 아플수록
향수는 더러 아편인 것
개나리 노란 함성이
울타리에 자욱한데
대합실 나무 의자 위에
분신처럼 남은 사연.
너무 순해 외려 안쓰런
건너편의 고향 마을
마지막 하직인 양
떠남은 또 죄스럽고
메마른 오열 덩어리가
가시처럼 걸끄럽다.
가까울수록 먼 이별
지겹도록 긴 평행
간곡한 합일의 염원
체념한 지도 이미 오래
철길은 함묵으로 누워
순천이나 다독인다.
최일법(기도 안산시 원곡동794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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