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정의 조국이 세워줘야"|고국 찾아 1년9개월째 홀로 투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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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무도인(무도인)의 생명은「명예」다.
실추된 명예를 지키려는 자존심, 그 집념하나로 무려1년9개월 동안 끈질기게 법정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무도인이 있다.
김용길(김용길·53·로스앤젤레스 도산 체육관장·태권도8단)씨, 미국 LA의 한인사회에서는「그랜드 마스터 킴」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인물이다.
김씨가 자신의 생활터전인 LA를 떠나 객지(?)인 서울에 와 여관생활을 시작한 것은 지난 90년11월27일, 햇수로 3년 동안 김씨는 같은 여관, 같은 방에서 기거하며 대한체육회(회장 김종렬)를 상대로 자신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미 두번의 실패를 거듭한 김씨의 법정싸움은 이제 3심인 대법원에 올라 마지막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김씨의 명예찾기 투쟁의 시발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0년1월20일 미국 텍사스주 댈라스 시에서 재미교포사회에서는 처음으로 미주전지역대표·대의원 44명중 37명이 참가한 가운데 재미대한체육회 제6대 회장을 선출했다.
당시 재미대한체육회 부회장이던 김씨를 비롯해 3인의 후보가 각각 2만 달러씩의 공탁금을 걸고 출마, 실시된 이날 선거에서 2차 투표 끝에 김씨가 1표 차로 당선됐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김씨의 당선을 공고했고 회장취임식도 마쳤다.
그러나 1차 투표에서 탈락한 이민휘(이민휘)후보를 지지한 5명의 대의원들이 서울의 대한체육회에「대의원으로 참석한 지역부회장들이 부정대의원이므로 이 선거는 무효」라는 진정서를 보내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대한체육회는 신동욱(신동욱)부회장을 미주지역에 파견했고「5명의 대의원자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김 후보에게 미주체육인들의 화합차원에서 재선거를 권유, 김씨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김씨는 사실상 회장직을 포기했다.
그러나 이후『「그랜드 마스터 킴」은 회장이 되기 위해 대의원을 조작했다』는 상대방의 비방을 듣게됐다. 이에 따라 김씨는 부정대의원의 자격을 재조사해본 결과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김씨는 5명의 대의원이 정당한 대의원이었음을 입증하는 증빙서류를 대한체육회에 보내 시정을 요구했으나 무시당한 채 재선거 결과 이민휘씨가 새로운 미주대한체육회장에 인준됐다.
이후 김씨의 투쟁이 시작됐다.
경기공고→경희대를 거쳐 결혼과 함께 부부유학생으로LA에 건너간 게 68년, 미국생활 22년 만에 김씨는 가방하나만을 들고 서울행을 결심했고 서울동부지원에「90년1월20일자 정기대의원총회에서 김용길 후보(원고)의 회장당선결의 유효확인 및7월14일자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이민휘 후보를 회장으로 선출한 결의의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다.<중앙일보91년6월30일자 보도>
결과는 1심은 기각, 2심은 각하.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김씨의 판정패.
그러나 2심 판결문에 따르면 명예투쟁의 핵심인 5명의 부정대의원에 대해「대의원으로서 아무런 하자가없다」고 명시하고「그러나 6대 재미대한체육회장의 임기가 91년7월까지이므로 이미 임기가 끝난 시점에서 유·무효확인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 한 것.
결국 내용상으로는 김씨가 자신의 명예를 되찾았으나 판결을 받지 못한 것.
어떤 의미로 보면 사실 김씨의 싸움은 끝이 났다.
그러나 김씨는 끝까지 싸우기로 결심, 대법원에 상고했다.
잘못 끼워진「첫 번째 단추 구멍」을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김씨의 신념.
특히 김씨는 해외에서 자라나는 교포2세들에게 1세대가 잘못된 길을 살아간다는 그릇된 인식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굳은 신념을 갖고있다.
지금도 격려전화를 계속하는 2세들이 조국을 지켜보고 있고 동시에 지금껏 도산 체육관을 거쳐간 5만여 태권도가족들에게 김씨가 입버릇처럼 되뇌어온『우리의 조국은 정의를 존중하는 나라』라는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몇 차례 이 지겨운 싸움을 끝내려고도 했지만 부인 김수자(김수자)씨를 비롯, 장남 앨버트(24)와 레니(23)·캐린(20)등 두 딸의 격려가 오히려 힘을 주고있다는 김씨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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