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에 드문 전문경영인출신 김원길(의원탐구: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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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뉴DJ」 이미지 부합/민주화 투쟁경력 없고 호남출신 아닌 신인/증시 밝은 당대표 경제조역
김원길의원(민주·도봉을·49)을 만나보면 김대중대표의 주변이 옛날보다는 한결 넓고 단단해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자라온 환경이나 경력이 투사 김대중과는 어울리지 않는 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온건파 다양성을 추구하는 「뉴DJ(김대중)」 플랜과 맞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김대중주변에서 이제껏 흔히 볼수 있던 인물군과는 다르다.
그는 민주화투쟁 경력도 없고 호남출신도 아니며 정치판을 오래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그가 김 대표와 인연을 맺은 과정은 단순하고 독특하다. 부사장까지 지낸 대한전선을 그만두고(82년) 미국에서 공부하다 김 대표의 『대중참여경제론』(하버드대 발간)에 매료되어 『김 대표를 위해 일하고 싶고,정치하고 싶다』고 프러포즈해 87년 대통령선거때 김 대표 진영에 뛰어들었다.
당시 투사들만 우글거리던 「김대중캠프」에 서울토박이로 대기업 전문경영인이 낀 것은 확실히 이색적이었다.
김 의원은 『민주대 반민주논쟁,출신지역을 가르는 분위기에서 김대중후보를 위해 뛰어다니자 친구·친척들은 왜 그러느냐고 말렸다』고 회고했다.
김 의원은 서울 와룡동에서 태어나 경기중·고를 다녔다. 그 당시 서울에서 고교를 다닌 중년층이면 대충 기억하는 「경기주먹」클럽인 「세븐 스타」의 리더였다. 걸핏하면 경복·중앙·중동주먹들과 한판 벌이던 소위 경기깡패였다. 요즘 TV코미디 「추억의 책가방」에 반장까지하는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민자당의 김영구사무총장(경기고·퇴학)은 세븐 스타의 원조격이었다. 그는 고3때 무기정학을 받고 거의 수업을 못받았으나 입시 두달전 정학이 풀렸다. 그때부터 본격 공부해 서울대 상대에 합격해 두고두고 화제를 남겼다.
군복무·대학졸업후 그는 대한전선에 입사,창업주 설경동회장의 신임을 받아 5년만에(29세) 기획실장이 되었다. 고교동창(현 설원양회장)의 선친으로부터 친아들이상으로 귀여움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책임과 함께 붙어다니는 과로,공부를 더 하고 싶은 욕심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유학길에 올랐다. 경영학(웨스트코트대)을 전공하던중 우연히 김 대표의 경제이론을 접한다.
『시장경제원리에 충실하면서 분배문제를 접목시키려는 노력,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존발전논리 등을 보고 한국경제가 선택할만한 노선』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현실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그는 귀국한뒤(86년) 당시 정경유착구설수에 시달렸던 청보식품의 경영을 맡았다.
매제가 설립한 청보는 그때 청와대 안주인(이순자씨) 소유라는 루머에 시달려 엉망이었고 결국 정상궤도 진입에 실패하고 87년 문을 닫았다.
그때 「잘못된 정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체험한 그는 김대중후보의 참모였던 조윤형(현 무소속)·정대철(현 민주당최고위원)의원을 통해 정치생활에 뛰어든다.
정 의원은 그의 고교 1년 후배이며 이들 3인은 부인들끼리의 교분(이대동창)으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
그때 그는 강남쪽에 김 후보의 사조직 사무실을 차리고 반DJ성향 기업인·중산층을 상대로 지지층 확보에 열심히 나섰다.
이때의 역할덕분에 그는 88년 13대 총선때 서울 도봉을에서 평민당 간판으로 뛰어들 기회를 얻는가 했으나 재야입당파 우대문제로 이철용씨(13대의원)에게 공천을 뺐겼다.
대신 전국구의원 교섭을 받았지만 「자존심이 상해」 걷어차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공천을 못얻은데 대해 「구차하게」 DJ를 건드리지 않았고 이것이 쉽게 김 대표주변에 복귀한 계기가 됐다.
13대때 그를 밀어낸 이철용씨가 작년 광역의회 공천파동으로 탈당하면서 그자리를 메우는 행운을 얻었고 이번 선거때 이씨와 정반대 입장에서 대결,완승했다.
요즘도 그는 주례서는데 열성적이다. 주말이면 미아리쪽 교통혼잡때문에 오토바이를 타고 예식장으로 이동한다. 그는 「주례안서기」를 깨끗한 정치의 실천사례로 지역구의원에게 일괄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한다.
그는 정책위부의장단의 일원이며 경제정책,특히 증시대책브레인이다. 정치공백시절 89년 증권전문지(중앙증권일보)를 만들기도 했다.
김 의원은 경제재도약을 위한 정권교체를 실감나게 역설하는게 자신의 대선임무임을 알고있다. 야당식 풍토에서 발휘될 그의 역량과 역할은 아직 미지수다. 다만 의욕만은 넘쳐있다.<박보균기자>
□김원길의원 약력
▲서울출신(49세) ▲경기고·서울대 상대 ▲대한전선 부사장 ▲미 웨스트코스트대 ▲청보식품사장 ▲평민당 당무지도위원 ▲14대의원(서울 도봉을) ▲민주당 정책위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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