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맹탕 브리핑' 소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금일 오후 3시 긴급 브리핑'.

징검다리 연휴의 마지막 날인 27일 오후 1시30분. 문화관광부는 출입기자 전원에게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사진)를 보냈다. 일요일에, 그것도 불과 한 시간 반 전에 알린 긴급 브리핑이다. 본지 기자는 즉시 문화부에 확인 전화를 했다.

"우리도 브리핑이 있다는 얘기를 30분 전에 들었다. 청와대 지시라고 한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관련 부서로 연락해 보라."

당황하기는 문화부 홍보팀도 마찬가지였다. 오후 3시 문화부 기자실에 모인 기자는 5명. 설명을 하기로 한 담당 국장도 늦었다. 긴급이라던 브리핑은 2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전문 공개 후 쏟아진 언론의 비판에 관한 해명이 전부였다. 그나마 문화부가 그간 누누이 설명했던 내용들이었다. 당국자도 겸연쩍었던지 "새로운 사실은 없다"며 "갑자기 불러내 미안하다"고 했다.

비슷한 시각 정부과천청사 기자실에는 10여 명의 공무원이 예고도 없이 들이닥쳤다. 재정경제부.산업자원부.보건복지부 직원이었다.

한.미 FTA 협정문에 관한 언론 보도에 오해가 있다는 각 부처 해명자료를 수십 부씩 복사해 왔다.'배기량 기준의 자동차 세제를 고치기로 한 것은 조세주권 포기가 아니라 세제 선진화 차원에서 우리 정부가 원래부터 추진했던 것'이라는 해명 등이었다. 경제부처에 속하지 않은 복지부는 따로 브리핑을 하려 했지만 기자실에 나온 기자가 두 명뿐이란 소식을 듣고 경제부처 브리핑에 합류했다.

그러나 이날 기자실에 나온 기자는 5명뿐이었다. 연휴라 공무원들이 청사에 나오지 않아 출근한 기자 대부분이 각자 회사에서 내근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기사 마감시간이 가까워지자 세 명이 자리를 떴다. 결국 17명의 고위 공무원이 휴일 출근해 기자 두 명을 앉혀놓고 '긴급 브리핑'을 한 셈이 됐다. 한 공무원은 "날씨가 화창해 가족과 나들이 가려다 호출을 받고 허겁지겁 달려왔다"고 말했다.

이날 각 부처의 한.미 FTA 해명 소동은 26일자 조간신문의 비판 보도가 발단이 됐다. 그동안 FTA를 반대해 온 언론은 물론 지지 입장에 섰던 곳까지 협정문 내용을 비판하고 나서자 범정부 차원에서 해명에 나선 것이다. 해명자료를 만들어 적극 대응하라는 지시가 각 부처에 내려갔다. 그러나 연휴였던 데다 주말이었던 탓에 관련 부처의 대응은 기대에 못 미쳤다. 대부분 부처가 해명자료를 e-메일로 배포하는 수준이었다.

그러자 출입기자를 상대로 한 브리핑 지시가 내려졌다. 이날 출근한 한 공무원은 "연휴라 기자실에 나온 기자가 서너 명밖에 안 된다고 하자 기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무조건 브리핑을 하라는 엄명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가 각 부처 기자실을 없애겠다고 하더니 정작 정부가 필요할 땐 출입기자를 호출해 브리핑을 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조차 일방통행식 브리핑 효과에 의문을 품고 있는 것이다. 국정홍보처는 22일 이른바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며 "그동안 부실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브리핑을 내실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5일 만인 이날 '긴급 브리핑'은 이와 거리가 멀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측과는 별도의 협의가 없었고 브리핑은 외교부와 재경부가 주도한 것"이라며 "청와대는 계획을 전해 듣기만 했다"고 말했다.

정경민.이지영.윤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