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만 키운 「이통소동」/오체영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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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제2이동통신 사업자선정 파동」이 한창인 며칠전부터 신문사에 많은 독자들의 항의전화가 걸려왔다. 그중 한사람인 박모씨(59·서울 성수동1가)는 『제2이동통신 파동으로 큰 손해를 봤는데 왜 언론은 일반국민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보도를 하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한다는 박씨는 제2이동통신 1차심사 결과가 발표되기 직전 선경그룹의 대한텔레콤이 최종 선정될 것으로 예상하고 유공주식 6백주와 대한텔레콤에 참여한 나우정밀주식 7백50주를 샀다.
제2차심사 결과에서 대한텔레콤이 「예상대로」선정됐지만 특혜시비가 일면서 그가 산 주식들은 폭락했다.
박씨는 『이같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건전한 주식투자를 바랄 수 있겠느냐』며 『선경이 포기하면 유공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재판을 걸겠다』고 흥분했다.
다른 독자 전화도 박씨와 비슷한 경우로 전혀 예상밖의 손해를 보고도 어디가서 하소연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소액주식 투자자들이었다.
그러나 「제2이동통신 파동」은 국민들에게 정신적으로도 많은 상처를 남겼다. 기자도 피해자의 한사람이다.
며칠전 주한미국대사관 관계자들과 언론사 기자들이 만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타결배경에 관해 의견을 교환할 기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미 대사관의 한 관계자가 제2이동통신 파동에 대해 물었다.
대통령 인척에 대한 특혜,선정 결과가 휴지화 되는 법과 행정의 부재상들이 외국인들 앞에서 왈가왈부 될때 창피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선경그룹 한 관계자는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했는데 왜 특혜를 받은 것처럼 보느냐. 주변의 시선이 따가워 어디가서 명함을 내놓기도 힘들었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번 파동으로 물론 당사자인 선경그룹이 가장 큰 정신적·금전적인 피해를 보게됐다. 정부의 신뢰도도 국내외적으로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국민들의 피해는 훨씬 심각하다는 느낌이다. 특정업체에 대한 특혜시비,집권을 겨냥한 정치권의 대립 등이 어지럽게 뒤엉켰던 이번 소동을 지켜 보면서 국민은 누구도,어느쪽도 믿을데가 없음을 절감하고 깊은 소외감과 분노에 빠진 것이다.
외국기업에 대해서는 금전적인 보상 등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내부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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