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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지방 단체장 · 의원 '독선 행정' 견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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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주민소환제는 매니페스토 협약 등을 통해 밝힌 공약을 지키지 않거나, 비리를 저지른 공직자를 주민이 투표로 해임하는 것이다. 사진은 2005년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 유치를 놓고 주민투표를 실시하고 있는 군산 시민들. [중앙포토]

투표로 선출된 지방 공직자를 주민들의 의지로 임기 중에 해임할 수 있는 주민소환제가 25일부터 도입됐다. 소환 대상 공직자 이름이 벌써 거론되는 등 파장이 예상된다. 주민소환제의 배경과 절차.역사를 알아보고 문제점은 없는지 공부한다.

◆주민소환제 왜 도입하나=주민소환제는 임기가 남은 선출직 공무원을 유권자가 고발해 투표로 해임하는 것이다. 독단적 행정과 비리.무능력을 막는 게 목적이며, 시.도지사 등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이 대상이다.

주민소환제는 대의제 보완을 위한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다. 현대 민주주의는 선거로 뽑힌 대표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대의제를 택하고 있다. 그러나 대의제는 선출된 공직자가 문제를 일으켜도 다음 선거까지 바꾸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비리를 저지른 지자체장이라도 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나와야 물러났다. 구속된 지자체장이 사퇴하지 않고 업무를 계속해 '옥중 행정'이란 말도 나왔다. 주민소환제는 이런 폐단을 고쳐 지방행정을 투명하게 하고 책임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환 사유엔 제한이 없다. 비리뿐 아니라 공약을 실천하지 않거나, 인사 전횡 등 주민의 뜻에 반하는 행위가 있을 때 등 어떤 이유라도 가능하다.

주민소환제를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국민의 대표에 적용하면 국민소환제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임기 중에 해임하는 국민소환은 택하지 않는다.

◆주민소환제 어떻게 진행되나=절차는 크게 소환 발의와 투표의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소환 발의는 뜻이 같은 주민의 연대 서명 절차다. 발의가 성립하는 투표수는 나라마다 다른데, 우리나라는 시.도지사의 경우 해당 지역 투표권자의 10%, 시장.군수.구청장은 15%, 지방의원은 20% 이상이다. 미국은 평균 25%이나 지역마다 5~50%로 다양하다. 일본은 투표권자 3분의 1의 서명이 있어야 발의가 가능하다. 발의가 성립하면 주민 투표가 진행된다. 주민소환투표안이 공고된 직후부터 투표 결과가 공표될 때까지 해당 단체장과 지방의원의 권한은 모두 정지된다. 투표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하고 과반수가 찬성하면 소환이 확정돼 해당 공직자는 즉시 물러나야 한다. 후임자는 매년 4월과 10월에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에서 뽑는다.

◆주민소환제의 역사=주민소환제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도편추방제(陶片追放制)에서 유래했다. 아테네는 세력가 중에서 국가에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인물의 이름을 도자기 조각에 적는 투표로 추방함으로써 민주정치를 유지했다.

근대적 형태의 주민소환제는 1903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시에서 처음 도입됐다. 1909년에는 하퍼 LA 시장이 처음 주민소환제로 쫓겨났다. 이후 미국은 26개 주에서 주민소환제를 택하고 있다. 2003년 10월 7일 캘리포니아주는 당시 그린 데이비스(민주당) 지사를 주민소환으로 해직시키고, 보궐선거를 통해 영화배우 출신인 아널드 슈워제네거(공화당)를 주지사로 선출했다.

유럽의 경우 스위스.독일이 주민소환제를 택하고 있다. 독일은 1990년대 초 동.서독 통일 당시 불안해하는 동독 주민을 달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주민소환제를 실시했다. 이후 독일은 소환제를 점차 강화해 일부 지자체는 선출직 공무원뿐 아니라 지자체장이 임명한 주요 공직자까지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5월 '주민 소환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해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본격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문제점은 없나=주민소환제는 무엇보다 공직자들이 지역 주민의 목소리에 좀 더 귀기울이도록 한다. 또한 부정부패에 연루되거나 공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몰아내 기강을 세울 수 있으며, 직권 남용을 견제할 수 있다. 당선만을 목적으로 공약을 남발하는 사태도 막아 책임정치가 확립된다.

그러나 주민소환이 너무 잦을 경우 지방행정이 흔들리고 비효율이 발생하는 등 부작용을 낳는다. 주민소환이 진행되면 해당 지자체장의 업무가 정지되기 때문에 지방행정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게다가 재.보궐 선거의 반복으로 예산과 국력의 낭비가 불가피하다.

정당이 기초자치단체장.의원 후보를 추천하고 있어 주민소환제가 정당 간 정치투쟁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크다. 그러면 주민소환제가 오히려 지역 내 갈등을 부추기고, 지방행정을 황폐화할 수 있다.

또한 지나친 지역 이기주의로 국익이 무시될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쓰레기 매립장이나 화장장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지자체가 과거보다 심하게 반대할 우려가 높다. 인기만을 위한 즉흥적인 정책이 쏟아지며 장기적 국가 과제들이 무시될 위험도 있다.

장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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