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홈런처럼 하늘로 사라진 그의 목소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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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 그가 살아서 그렇게 많이 외쳤던 어느 홈런처럼 담장 너머로 날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높이 떠올라 어느 순간 세상을 내려다보고, 그러다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는 흰 점, 그 홈런처럼 우리를 내려다보면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얼마나 많이 홈런이란 말을 우리에게 들려줬던가. 그는 늘 정갈한 목소리, 꼿꼿한 발음으로 “넘어~갑니다! 홈, 런!”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의 음성을 듣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 가슴을 두근거리고, 환호와 한숨을 교차했던가. 그렇게 우리에게 홈런 소식을, 금메달 소식을, 신기록의 순간을 가장 먼저, 가장 극적인 호흡으로 전해 줬던 그가 이제 세상에 없다. 그는 어느 홈런왕의 타구에 몸을 싣고 날아가고 있는가.

23일 세상을 등진 송인득(1958~2007·사진) MBC 아나운서에 대한 기억은 모두가 흥분이요, 모두가 격정이다. 그가 전하는 소식은 흥분과 격정이었지만 정작 그는 차분했고 논리적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듣는 사람을 더 뜨겁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삼진 퍼레이드 때도, 많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세계 정상에 오르는 순간에도 듣는 모두가 만세를 외쳤건만 그의 목소리는 더 정확하고, 더 의미 있는 전달을 위해 균형을 잃지 않고 있었다.

지난해 그는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가 됐다. 그때 그는 한 아나운서 커뮤니티와 이제는 마지막으로 남은 인터뷰를 했다. “20년을 넘게 한 우물을 팔 수 있어서 좋았다. 다른 분들도 전문성을 갖고 매진한 분이 많은데 나를 전문인으로 대우해 준 것이 고맙고 자랑스럽다”라고. 그처럼 그는 전문성을 중요하게 여겼고 자신이 전문가임에 자부심을 가졌다.

그가 남긴 ‘야구 노트’는 숫자의 나열이 아니다. 그의 목소리다. 그 꼼꼼히 적힌 숫자들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어느 선율보다 숨가쁘게 절정을 향해 치닫던 가쁜 호흡을 느낀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 2~3시간씩 그 노트를 채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고민했던 그 흔적에서, 땀의 소중함을 느낀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홈런!”이라는 외침과 함께 듣는 모두를 절정으로 이끌었던 그의 열정을 느낀다. 그 한순간 한순간을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준비했던가. 그의 야구 노트 한 줄 한 줄에 담긴 땀과 노력이 어느 전문가에게 뒤지겠는가. 그는 장인(匠人)이었다.

‘다저스의 목소리(Voice of the Dodgers)’로 불리는 빈 스컬리(80)가 부러운가.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한 구단의 야구 중계를 60년(정확히 58년째)간 이어온 그의 노력과 열정이 부러운가. 해설자 없이 1인 중계를 할 정도로 해박한 그의 야구 지식이 부러운가. 그런 스컬리가 부럽다면 고(故) 송인득 아나운서를 추억하자.

그는 우리에게 ‘홈런의 목소리’였다. 언제나 야구를 사랑했고, 야구 중계를 사랑했던 그가 우리에게 들려줬던 그 수많은 홈런을 떠올리면 그는 한 방의 홈런처럼 희망 넘치는 추억으로 남는다. 그 홈런들처럼 하늘을 지나 담장 너머 저편으로 사라져간 그는 분명 ‘영원한 홈런의 목소리’였다.

네이버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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