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전통의 지상 최고의 와인 맛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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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26면

1. ‘샤토 마고’의 저장고에 누워 출시를 기다리는 2006년산 포도주 통들. 2. ‘라피트 로췰드’의 포도밭 정경. 드문드문 장미꽃이 심어져 있는데 그 까닭은 장미가 민감한 수목이어서 포도에 옮기는 전염병을 감지하기에 장미 상태를 보고 전염병 예방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

나폴레옹 3세 때인 1855년 정해진 뒤 150여 년을 내려오는 프랑스 보르도 메독의 그랑 크뤼(최고급 포도 경작지) 등급. 다섯 개 등급 안에 드는 와인은 모두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는다. 그 가운데서도 으뜸인 ‘프르미에 그랑 크뤼 클라세’를 생산하는 샤토는 단 다섯 개뿐이다. 와인 본가 프랑스의 8000여 개 샤토 중 이들 다섯 샤토가 단연 최고 중의 최고로 꼽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생산량도 적고 빈티지에 따라서는 가격도 상상을 초월한다. 프랑스의 웬만한 와인 상점에서 이들 샤토의 와인은 주문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세계 최고의 와인을 생산하는 보르도의 5대 샤토 가운데 유럽과 아시아ㆍ미국에서 각각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샤토 라피트 로췰드ㆍ마고ㆍ오브리옹을 다녀왔다.

프랑스 보르도 3대 샤토

샤토 마고
샤토 마고는 가는 길부터 달랐다. 보르도에서 자동차로 30여 분을 달려 마고 마을로 접어들자 눈이 번쩍 띄었다. 파리 와인 상점에서도 자물쇠로 잠가 놓고 팔 정도의 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 캉트낙 브라운’ ‘샤토 지스쿠르’ ‘샤토 디상’ 등이 줄지어 나타났다.

그렇게 10분쯤 더 달리자 길 오른편 너머로 그야말로 성이라는 이름에 어울릴 법한 샤토 마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마고 지방의 쟁쟁한 샤토 중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힐 만하다 싶었다. 진입로부터 다른 샤토에서 쉽게 느끼기 어려운 고급스러움과 아늑함이 동시에 풍겨났다. 마고는 프랑스에서는 물론이거니와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힌다.

‘그랑 뱅’으로 불리는 1등급 ‘샤토 마고’에 조금 못 미치는 와인을 세컨드 와인으로 시장에 내놓는데 바로 ‘파비용 루주’다. 가격은 훨씬 저렴하지만 웬만한 2등급 와인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다. 디렉터 필립 바스콜은 “‘파비용 루주’는 좀 더 과일 향이 진하고 상큼한 맛이 강하며, ‘그랑 뱅’은 묵직하면서 진한 맛이 혀끝에 오래 머무르는 게 특징”이라고 차이를 설명했다. 그러나 일반인이 마시면 거의 차이를 느끼기 힘들어 보였다.

보르도에서는 드물게 샤토 마고는 화이트 와인도 생산한다. ‘파비용 블랑’이다. 포도 품종을 ‘소비뇽 블랑’만으로 하기 때문에 입안을 가득 메우는 진한 ‘아이덴티티’가 특징이라고 한다. 바스콜은 “‘파비용 블랑’은 바닷가재나 흰 살 생선, 발효 정도가 심하지 않은 치즈와 곁들이면 좋다”고 덧붙였다. ‘그랑 뱅’은 2시간 정도 디캔팅하는 게 좋지만 ‘파비용 루주’의 경우 이보다 좀 시간을 줄여도 좋다.
디렉터 추천 빈티지=1982ㆍ1989ㆍ1990ㆍ2000ㆍ2003ㆍ2005ㆍ2006년(6월 출시 예정)

샤토 라피트 로췰드
라피트 로췰드의 첫 느낌은 자신감이었다. 생각보다 크지 않고 많이 가꾸지도 않은 듯 보이는 샤토 건물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입구로 보아 1등급 샤토인지 좀 의아할 정도였지만 들어서면서부터는 달랐다. 와인 제조 총책임자인 디렉터 샤를 슈발리에는 구수하고 겸손한 말투 속에서도 줄곧 ‘최고 샤토’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라피트 로췰드는 1등급 샤토 가운데서도 유럽에서 특히 인정받는 곳이다. 오메독의 생테스테프와 마고 사이의 포이악 지방에 있는데 포이악은 1등급 샤토만 세 곳(라피트 로췰드ㆍ무통 로췰드ㆍ라투르)이나 보유한 곳이기도 하다.

기품 있는 맛 때문인지 프랑스 유명 정치인 가운데 라피트 로췰드 애호가가 많다고 한다. 특히 이 지역 출신으로 얼마 전 사르코지 1기 내각에서 수석 장관에 오른 알랭 쥐페 전 총리는 손꼽히는 마니아다.

3대째 와인 가문에 봉사하고 있는 ‘샤토 오브리옹’의 디렉터 장 필립 델마스.

라피트 로췰드의 특징은 ‘튼실한 골격’이라는 말로 설명된다. 묵직하고 웅장한 느낌이 다른 와인과는 확연하게 구별된다는 것이다.

슈발리에는 라피트와 잘 어울리는 요리로 클래식한 ‘마리아주(전통적인 궁합 정도)’라면서 쇠고기와 오리고기를 추천했다. 아시아 요리는 일본과 태국 음식이 특히 잘 맞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울러 라피트를 제대로 마시는 요령으로 마시기 오래전에 마개를 열어 두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3∼5시간 전에는 열어 두어야 닫혀 있던 와인이 조금씩 숨을 쉰다고 설명했다.
디렉터 추천 빈티지=1982ㆍ1996ㆍ2000ㆍ2003ㆍ2005년

샤토 오브리옹
샤토 오브리옹을 찾아가기 위해 샤토에 전화를 걸었다. 길을 묻자 직원은 “눈에 쉽게 띄기 때문에 오브리옹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만큼 오브리옹 샤토 입구의 커다란 성벽은 근사했다. 그러나 위압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맛도 첫인상처럼 우아하고 웅장한 느낌이지만 고집스럽지 않다는 게 샤토 측의 설명이다.

“책에서 보고 메독 와인만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브리옹은 무게가 있으면서도 메독 와인과 달리 부드럽기까지 하다”는 샤토 오브리옹 디렉터 장 필립 델마스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 오브리옹은 5대 샤토 가운데 유일하게 메독 지방이 아닌 곳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다. 보르도의 서남쪽에 붙어 있는 페삭 레오냥 지방이다. 메독 와인에 비해 텁텁한 맛을 내는 카베르네 소비뇽의 비율이 적어 한결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기품 있으면서도 우아한 게 특징이라고 강조한다.

오브리옹은 미국인이 주인이기 때문인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랑스 와인으로 알려졌다. 오브리옹의 생산량 가운데 25% 이상이 미국에서 팔린다. 아시아 시장은 10%에 달하는데 우리나라는 1% 정도에 해당한다.

오브리옹은 특히 82년과 89년, 2005년 빈티지가 최고로 취급된다고 한다. 샤토 측에 따르면 2005년산은 와인 상점에서 병당 500유로(약 62만5000원)에 팔리고 있다. 89년산이 최근에 샤토에서 한 상자 나갔는데 샤토 출고 가격이 병당 1200유로(약 150만원)였다. 상점에서는 여기에 몇 배 더 한 가격에 거래된다.

델마스는 “마시기 두세 시간 전에는 디캔팅해야 하며 원두커피 냄새와 시가향을 잘 음미하면서 마셔 보라”고 조언했다. 그래선지 샤토 앞뜰에서 아침 내내 원두커피를 태우는 듯한 냄새가 그윽하게 느껴졌다. 그는 “붉은 육류와는 대부분 잘 어울리는데 치즈와는 그렇게 좋은 궁합이 아니다”고 했다.
디렉터 추천 빈티지=1959196119821989199020002003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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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어요, 와인의 그 오묘한 세계

세계 최고 샤토의 디렉터들은 와인을 뭐라고 설명할까. 그들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와인과 그 뒷얘기를 들어봤다.

‘라피트 로췰드’의 디렉터 샤를 슈발리에
그는 와인을 마실 때마다 사람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개인의 인상과 추억에 따라 같은 와인이라도 정말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에게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와인을 마시면 호수나 그림이 보이곤 하는지 물어봤다. 그는 “예전 디렉터 가운데 한 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말한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을 공부했던 그 양반은 첫 잔을 마시고 나면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나 쇼팽의 ‘이별곡’이 떠오른다고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러니까 와인은 살아 있는 거다. 마시는 이의 가장 발달한 감각을 자극한다”고 했다.

‘샤토 마고’의 디렉터 필립 바스콜
그는 와인을 한마디로 ‘알 수 없는 세계’라고 정의했다. 같은 샤토에서 만든 같은 빈티지의 와인도 마실 때마다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늘 똑같은 맛으로 한결같이 뽑아내는 맥주가 기계 냄새 나는 술이라면, 맛도 분위기도 자주 바뀌는 와인은 사람 냄새 나는 술”이라고 덧붙였다.

‘샤토 오브리옹’의 디렉터 장 필립 델마스
할아버지 조르주 델마스부터 3대째 오브리옹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뼈대 있는 와인 가문의 사람이다. 그래선지 그는 “와인 하면 가족사(家族史)가 떠오른다”고 말한다. 예닐곱 살 무렵부터 포도밭에서 놀았고 샤토에도 자주 와봤다고 했다. 언제나 친숙한 느낌이 든다면서 와인은 자신에게 가정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존재라고 했다. 그는 “와인을 공부하려는 사람이 많은데 와인은 공부한다기보다 오래 곁에 두고 함께하다 보면 어느 새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술”이라고 했다. 아울러 “한 입 마셔 보고 빈티지를 맞힐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와인을 잘 모른다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냥 즐겨라”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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