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필, 케이블서 지상파로 ‘탈옥’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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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03면

토요일 밤에서 일요일 새벽에 걸쳐 SBS 전파를 탄 ‘프리즌 브레이크’ 1~2편의 웬트워스 밀러. 다음주 토요일 3~4회가 방송된다.

26일 토요일 밤, 온몸에 설계도 문신을 새긴 신비한 푸른 눈의 남자가 SBS 전파를 탔다. 태평양 건너 한국에서 ‘석호필’이란 애칭을 얻은 ‘완소남(완전 소중한 남자)’ 배우 웬트워스 밀러. 미국 드라마(이하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사형수 형을 구하러 일부러 죄를 짓고 교도소에 들어가 탈옥을 도모하는 마이클 스코필드 역으로 지상파 시청자에게 첫선을 보였다.

배우 웬트워스 밀러

석호필의 지상파 상륙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한국 미디어ㆍ대중문화 시장의 지각변동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미드는 있었다. 그러나 ‘600만불의 사나이’ ‘맥가이버’ ‘V’ 등 예전 미드는 지상파가 수입해 우리말로 더빙해준 ‘완제품’들이었다. 편성권자의 안목으로 골라낸 콘텐트를 시청자가 감식(鑑識)하는 구조다.

요즘 젊은 층은 미국 현지방송을 실시간 인터넷으로 다운받아 직접 자막까지 제작해 돌려 본다. 이들이 시청 타깃인 케이블TV가 재빠르게 주요 미드 판권을 확보했다. 케이블을 통해 경쟁력이 확인된 미드 시리즈를 방송3사가 받았다. ‘프리즌 브레이크’에 앞서 ‘CSI’(MBC), ‘위기의 주부들’‘로스트’ (이상 KBS) 등이 이런 식으로 지상파를 탔다.

케이블 시청층에서 검증된 콘텐트를 지상파가 방영하는 구조는 강점이 있다. SBS 영화팀 관계자 말마따나 “기본 인지도를 토대로 더 넓은 시청자층을 확보하는 안정된 루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드의 주 시청층인 20, 30대가 광고 소구력이 높은 연령층이란 점에서 트렌드의 리트머스 역할도 한다.

변방에서 주류로 밀어닥친 것은 미드 열풍만이 아니다. 요즘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의 주요 패널로 각광받는 노홍철ㆍ현영 등도 케이블TV에서 먼저 떴다. 지상파 진출 초기엔 ‘비호감’ 연예인으로 꼽혔지만 이젠 그 색다름이 ‘호감’으로 인정돼 광고시장까지 점령했다.

지상파가 시도하지 못하는 실험적인(그래서 때로 선정적인) 콘텐트를 케이블이 치고 나가면 지상파가 은근슬쩍 받기도 한다. MBC ‘황금어장-무릎팍 도사’가 연예인의 치부를 들추기 전에 ‘재용이의 순결한 19’(Mnet)는 엽기적인 연예차트 쇼를 선보이고 있었다.

지금도 케이블의 철창을 넘어 ‘석호필’들이 지상파 광장으로 나오고 있다. 변화의 바람이 변방에서 불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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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브레이크(Prison Break) 미국 폭스TV에서 2005년 8월부터 방영 중인 인기 드라마. 미국 부통령의 동생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 선고를 받은 형을 구출하기 위한 천재 건축가의 탈옥기다. 미국에선 시즌 3가 올가을 방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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