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도 한중수교 바빠졌다|문학·미술·학술 등 공식교류 가속화 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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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사람들은 흔히「순치」란 말로 표현한다. 역사적으로 동일문화권을 형성하면서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맺어오고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장장 80여 년에 걸친 공식적인 단절기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개방정책이 가시화 한 80년대 들어 한국과 중국 두 나라간의 문화예술교류는 다소 활기를 띠었다. 비록 공식 성을 표방할 수는 없었으나 양국이 문화예술분야에서 공유하는 정서적 몫이 워낙 컸기 때문에 상호교류에 별다른 무리나 장애가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미 수교·적성 국이라는 제약 때문에 교류는 적극성을 띠지 못했다. 한중수교는 이러한 상황을 크게 변화시켜 보다 적극적이고 공식적인 교류의 장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 측면에서 보면 수교관례상양국은 곧 문화협정을 체결하게 되며 협정발효와 함께 양국간의 문화예술교류는 일단 공식 성을 띨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우리 쪽이 중국에 가서 공연을 할 경우 지금까지는 중국 측이 북한을 의식, 「연환」「야회」등의 비공식적이고 우회적인 용어를 사용해야만 했으나 이제부터는 당당히 공연이란 공식용어로 교류가 가능해지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수교이전에도 실질적인 문화예술교류가 진행돼왔기 때문에 수교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물꼬가 일시에 트이는 변하는 없을 것이다.
문화부관계자들은 한소 수교이후 소련의 각종 문화예술단체가 우리나라에 와 왕성한 공연을 보여준 것과는 달리 중국이 한국에 과시할만한 미지의 문화예술이 그다지 많이 남아있지 않으므로 양적 러시현상이 뒤따를 것이라고는 보지 않고 있다. 관계자들은 또『중국이 여전히 사회주의 이념체제를 준봉 하는 국가라는 점에서 구 소련과의 전례에 따라 수교 후에도 양국 간 문화예술교류에 일정한 제약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관계자는『그러나 중국과 한국사이의 오랜 역사적 관계 속에서 축적돼온 각종 문화유산에 대한 상호교류·연구 등에 제한이 가해질 이유가 없으며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형성된 문화예술에 대해서도 중국사회가 변하고 있는 만큼 수용의 폭이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문화분야별로 한중수교이전의 문화예술교류현황과 수교후의 전망을 점검해본다.

<미술>
현대 중국화가들의 작품이 전시회를 통해 국내에 처음 선보인 것은 지난88년 서울올림픽 직전인8월10∼24일 한국화랑에서 열렸던「중공 현대 채묵전」. 옥명명 등 11명의 작품이 출품돼 큰 화제를 모았다. 중국화가들의 국내 전시회는 올림픽 이후의 개방추세를 타고 크게 활성화, 지금까지 개인전·기획전을 합쳐 줄잡아 30여 차례나 열렸다.
미술평론가 최병식씨는『수교로 한중간 공식 미술교류가 이뤄지면 서구에 편중됐던 우리미술이 균형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동양화가나 미술학도들의 중국유학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학>
88년 서울올림픽에 이은 한민족체전참가 중국동포들을 통해 한중문학교류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91년 한국문인협회가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와 공동으로 북경에서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으나 양국 간 국교가 없었던 관계로 문인협회 현수막이나 태극기 부착은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현재 문학 쪽의 인적교류는 중국동포작가들의 매개로 소규모로 이루어 지고있을 뿐이다. 다만 중국작가들의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활발하게 번역·출간되고 있는데 앞으로 정식수교에 따라 우리작품의 중국소개도 상대적으로 활기를 띠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출판>
지난 88년8월에 열린 제 2회 북경국제도서박람회에 한국도서 1백종을 출품하고 대표 9명을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양국 간 출판교류는 비공식교류를 원칙으로 점진적인 확대현상을 보이고있다.90년부터 시작된「사랑의 책보내기운동」에 힘입어91년12월까지 북경도서관을 비롯한 길림생·요령생·흑룡강생 지역 각급 도서관 및 조선족교육·문화시설에는 모두 6만여 권에 이르는 우리 책이 반입돼있다. 그러나 중국도서의 한국반입은 매우 미미한 실정이다.

<음악>
음악교류에 있어서는 한중간의 직접교류는 드물고 한·중·일이 함께 자리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91년12월 서울에서 중앙국악관현악단주최로 열린『한·중·일 민족음악회』와「21세기를 향한 민족음악의 전망」을 주제로 한 3국 합동 학술세미나 등이 있었다. 음악계는 북경·상해 등의 교향악단이 내한하는 등 중국 측의 상업적인 공연이 가능해 한중교류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학술>
중국대륙에는 우리민족의 기원을 밝힐 수 있는 유적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또 근대에 들어와 해외항일독립운동에 일종의 근거지를 제공해 준 곳도 중국이다. 따라서 고고학·인류학·민속학 등을 포함한 한국고대사의 구명과 함께 일본제국주의 침략기의 독립운동사를 실증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대륙중국에 산재해 있는 각종유적지들을 면밀히 검토하는 일이 긴요하다. 한중수교는 이들 학술연구자에 대한 정부차원의 공식지원을 가능케 해 이른바「현장이 없이 관념적으로 진행돼온 갖가지 가세」들을 검증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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