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사원 발령 거부 함부로하지 못한다”/서울민사지법 원고승소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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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자술서 불성실 작성”은 이유 안돼/결격사유 업무와 직접 연관돼야
연수기간을 거친뒤 정식으로 채용되는 수습사원을 회사측이 평가기준 미달이라는 이유로 해고한다면 근로자는 이를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일반적으로 수습사원은 정식사원이 아니므로 회사측이 마음대로 발령을 거부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법원은 이에 대해 『수습사원을 해고할 때도 발령을 내지 않은 결격사유가 앞으로 맡게될 업무에 직접 방해가 된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부당한 해고』라는 입장이다.
서울민사지법 합의42부(재판장 조중한부장판사)는 최근 수습사원 연수과정을 마치고도 자술서를 불성실하게 기재했다는 이유로 정식발령에서 제외된 공광규씨(서울 사당동) 등 5명이 한국감정원을 상대로 낸 해고 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이같이 판시,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공씨 등은 89년 10월 이 회사 신입사원 시험에 응시 합격한뒤 수습사원으로 채용돼 같은해 12월 18일간의 연수를 받았다.
그러나 공씨 등은 자신을 소개하는 자술서를 작성하면서 학생시절 현실부정적인 시집을 출간하거나 학생운동과 관련돼 처벌받은 사실을 기재치 않았다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된 회사측이 이들의 수습평점을 낮게 매기는 바람에 정식사원으로 발령받지 못했던 것.
현재 많은 회사가 채용하고 있는 수습사원제도는 신입사원 대상자를 일정한 연수기간을 거치도록 하고 그 기간중의 평가에 의해 채용여부를 결정하는 방법으로 「시용기간의 근로관계」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시용」이라는 것 자체가 해당근로자의 자질·성격·능력 등 업무에 대한 적격성 여부를 결정하는 단계이므로 통상의 고용관계보다 해고의 재량이 광범위하게 인정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시용기간의 적격성 판단은 앞으로 맡게될 임무에 적당한지 여부에 기초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수습사원에 대한 해고가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회사측이 주장하는 결격사유가 이들이 맡게될 업무에 비추어 중요하며 고용관계를 계속 유지하는데 적당치 않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고 밝혔다.
즉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안을 문제삼아 수습사원의 발령을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남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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