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너 자신이 생각하는 법을 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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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소크라테스씨, 질문 있어요
크리스토퍼 필립스 지음, 김현우 옮김, 민음사, 380쪽, 1만2000원

철학자 소크라테스(사진)는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통해 스스로 진리를 깨닫게 하는 교육법을 썼다. 책 제목은 마치 우리가 소크라테스에게 물어 정답을 들어보는 것 같지만, 소크라테스가 그럴 리는 없다. 원제 'Six Questions of Socrates(소크라테스의 여섯 가지 질문)'에서 드러나듯 소크라테스는 여섯 개의 키워드(덕.절제.정의.선.용기.경건함)를 뽑아내 "덕이란 무엇일까요?"식의 질문을 던질 뿐이다. 그 답의 물꼬를 트는 건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일본.그리스.멕시코 등지에 사는 '보통 사람'들이다.

저자 크리스토퍼 필립스는 미국 전역에서 '소크라테스 카페'를 운영하며 대화식 토론으로 철학의 대중화를 꾀하는 교육자다. 그가 '카페'의 무대를 세계로 넓혀 그 토론 내용을 이 책에 담았다.

우리나라에도 몇 번 다녀간 듯 한국 사례도 많다. "경건함이란 무엇일까요?"란 질문으로 시작한 토론이 우리나라에서는 '효'에 대한 논쟁으로 불거졌다. "경건함이란 경외감.복종.충성.의무감이 섞인 것"→"한국 사람에게 경건함이란 주로 혈연과 관련된 것"→"공자는 효심이야말로 모든 선행의 뿌리라고 했다"→"아들이 아버지에 대해 경외감.복종.충성.의무감을 다하면, 어른이 됐을 때 사회적 권위에 대해서도 똑같은 경건함을 보이게 될 것" 대화가 이런 식으로 흐르자 여성들이 반론을 제기했다. "낡은 경건함을 못 버리는 장남과 결혼 안 한다"→"유교의 효는 전혀 경건하지 않다. 뱃속의 태아가 여자아이면 낙태하는 부부가 많지 않으냐" 팽팽한 대립은 "맹목적인 복종과 충성은 진정한 경건함이 아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헌신하는 자세야말로 최고의 경건함"이란 10대 소년의 말에 일단 멈칫했다. "독재체제에 대한 이전 세대의 맹목적인 헌신은 경건함과 정반대되는 것"이라는 그의 말에 한 은퇴 노동자는 "요즘 젊은이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성실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다소 뜬금없는 대꾸를 하지만, 토론은 그 상태에서 결론을 열어놓은 채 마무리된다.

같은 질문은 그리스와 미국 등에서도 반복됐다. 각자의 문화와 처지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고, 저자는 경건함에 대한 동서고금 철학자들의 생각을 군데군데 집어넣어 살을 붙였다. 물론 소크라테스의 의견("경건함은 인간 존재를 위해 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도 다뤘다. 하지만 그의 말이 정답 취급받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가 철학자'란 저자의 소신이자, 소크라테스의 소신에 따라서다. 그렇다면 정답 없는 이 책은 뭔가. 문제를 제기하는 법, 남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열린 자세 등을 알려주며 '철학적 생각하기'를 유도하는 길잡이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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