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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영화는「흥행」보다「믿음」이 중요|감독의 인생-세계관을 영상에 담아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중국이 낳은 세계적 영화감독 첸카이거씨가 자신의 영화『현 위의 인생』내달 한국 개봉을 앞두고 18일 서울에 왔다.
52년 북경 생인 첸카이거 감독은 장이모 감독 등이 활약하는 이른바 중국 제 5세대감독군의선봉장으로, 불과 4편의 영화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화작가중의 한사람으로 떠올라있다.
그는 84년 데뷔작『황색대지』로 로카르노 영화제 은상,87년『대열 병』으로 몬트리올 영하제 심사위원특별상(감독상)을 받았고 88,91년의 칸영화제에서는『아이들의 임금님』과『현 위의 인생』을 출품, 영화평론가들로부터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광활한 중국대륙을 배경으로 강렬한 원색의 영상을 통해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 서방영화계는 동양의 표현주의 영화의 한 경지를 일궈냈다고 평했다.
바쁜 일정을 쪼개 20일 호암아트홀에서『하얀 전쟁』을 관람한 첸카이거 감독을 장길수 감독이 찾아와「한국과 중국, 아시아의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장 감독은 지난해 첸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몬트리올영화제에서『은마는 오지 않는다』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탄바 있어 두 사람은 구면이다.
장=『하얀 전쟁』을 본 소감은.
첸=전체적으로 통일성을 갖춘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한국 영화를 한 단계 높게 보았다.
특히 과장 없이 안정된 안성기의 연기는 훌륭했다. 영화시작한지 5분 후부터 안성기와 같이 일할 욕심이 생겼다. 그는 소외된 자의 고독과 비애를 탁월한 내면연기로 표현했다.
영화감독은 역시 제도권에서 미아가 된 사람들, 이를테면「잃어버린 세대」에 카메라를 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그전에 본 한국영화는 어떠했는가.
첸=이두용 감독의『물레야 물레야』와 장 감독의『은마…』를 봤다.『물레야‥·』는 여권이 무시당하는 동양의 오랜 부정적인 전통에 도전하고 있어 중국인의 눈에도 친숙한 소재였다. 친숙하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는 반면 보는 이를 놀라게는 못한다.
『은마…』는 전란중의 상처를 그렸다. 평범했던 여인이 창녀가 됐다해 그 결과만을 놓고 선악을 구분 짓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되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우리는 경건할 필요가 있다. 그 점이 좋았다. 잘못된 동기를 찾아 관객에게 보여줄 때 영화는 사회성을 획득한다.
장=첸 감독은 한국영화가 대체로 리얼리즘계통의 스토리위주의 영화라고 했는데 그에 비하면 첸 감독을 비롯한 제5세대감독의 영화는 대단히 표현주의 적이다. 예술영화는 반드시 표현주의 적이어야 하는가.
첸=양쯤을 확실하게 구분 지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자신이 표현하고 자는 바를 사전에 명확하게 어떤 양식으로 할 것인가 규정지을 수는 있을 것이다. 예술영화는 자신의 세계관·인생관을 자신의 영상 미학이란 설계도면 위에서 구축하는 작업이다. 최근 촬영을 끝낸『패왕별회』이란 영화에서는 리얼리즘기법을 상당부분 수용했다.
그러나 어떻든 자신의 스타일을 가꿀 필요는 있다. 예술영화가 표현주의 적이어야 된다는 것은 말 자체가 무리며 문제는 자신의 사상을 어떻게「표현」하는가에 달려있다.
장=『현 위의 인생』을 보면 각종의 상징, 예컨대 나비 연은 자유를 뜻하고 노인과 동네주민들의 삶은 어리석은 이데올로기에 매달린 삶이라는 식, 물론 노인 쪽은 확신의 이데올로기고 주민 쪽은 맹신의 이데올로기라는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러한 상징들이 상투적이고 단순하다고는 생각지 않는가.
첸=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상징물이 너무 복잡하면 관객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다.
오히려 나는 상징이 더 단순했으면 좋겠다. 이럴 경우 반드시 독창적인 상징이 되어야함은 물론이다.
중국인은 곧바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싫어하는 생리를 가진데다 현실적으로 검열문제도 걸려있다. 이것이 나의 영화를 난해한 영화가 되게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검토해 볼 문제다.
장=예술영화를 만들려면 한국도 그렇고 중국 쪽에서도 자본 구하기가 어려울 텐데.
첸=예술영화는 상업영화보다 제작비가 적게 든다.「흥행」을 염두에 두지 않는「믿음」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는 세계 각 국의 교류를 통한 제작비 염출 방식이 바람직하다.『현 위의 인생』도 영·독·일의 자본을 끌어들였다. 지금 이 영화는 세계40개국에서 상영중이다.
이런 점에서 한중간에도 예술영화교류·합작·투자·인적교류 등이 필요하다. 이것은 영화의 물적 교류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과 중국의 감독이 함께 일한다면 아시아의 눈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멋진 성과가 이뤄질 것이다.
첸 감독은 일본영화는 너무 상업적이라 최근에는 좋은 영화를 못 봤다며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제작비는 미국에서 들어온다고 덧붙였다.
그는 내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위촉됐으나 자신의 신작『패왕별희』이 출품되기 때문에 거절했다. 천안문사태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대 영화 과에서 강의를 맡았다. 현재는 북경거주.24일 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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