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선 「증안채권」 발행 기대/침체일로 증시 살릴 방법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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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돈푸는 극약처방 부작용 너무 커/단기 부양책은 후유증 경계해야
가라앉기만하는 주식시장을 다시 부추기게 하는 방법은 과연 있는가. 모든 시장은 수요공급의 원칙에 의해서 움직이므로 주식시장에서도 주식을 살 수 있는 힘,즉 매수여력을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
따라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다시 주식시장을 찾게 하는 것이지만,하루가 다르게 빠지는 주가를 보면서 선뜻 주식을 사겠다는 일반투자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돈을 풀어 직접적으로 주가를 떠받치는 극약처방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을 이미 뼈저리게 경험했다. 89년 12월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투신사로 하여금 무제한 주식을 사도록 해 주가를 받치도록 한 조치는 결국 2조9천억원에 이르는 한은특융으로 귀결되었을 뿐 지금까지도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증권당국은 3투신사에 대한 한은특융 집행외에도 지난달부터 근로자주식저축제도를 시행하고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투자한도를 확대하는 등 증시여건을 개선시킬만한 여러 대책을 내놓았는데도 주가가 계속 떨어지자 난감해하고 있다. 정치권을 비롯,여러 곳에서 추가적인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지만,쉽사리 내놓을 만한게 없으며 주가하락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마지막 카드로 내세운게 먹혀들지 못할 경우 감당하기 어렵다는 고민이 있다.
현재 증권당국이 1차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증시안정화대책은 연·기금의 주식투자확대다. 아무도 사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일단 기관들로 하여금 매수의 불꽃을 댕기도록 하자는 것이다.
국민연금기금 등 20개 주요 연·기금의 여유자금은 5월말 현재 18조2천억원선인데,재정투융자특별회계를 빼고 금융 및 증권시장에서 운용되는 자금은 12조6천억원선이다. 이들 연·기금은 이 여유자금의 4%선인 5천억원 정도를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데 그 투자를 10% 수준까지 늘리도록 해 6%인 7천5백억원 가량의 매수세를 형성토록 한다는 재무부의 구상이다.
그러나 정부관리기금은 현행 규정상 주식투자가 금지돼 있으며,민간기금 또한 주가가 떨어지는데 주식을 사려들지 않을 것이므로,당국의 「요청」 정도에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증시안정채권을 발행하자는 방안도 증권업계에서 논의되고 있다. 장기저리의 채권을 발행,이를 사는 이에게는 상속세와 증여세를 감면해주는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발행금리를 연 4% 정도로 크게 낮추는 대신 55%에 이르는 상속세를 대폭 감면해 주는 식으로 발행할 경우 채권수요가 생길 것이며,지하자금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도 낼 수 있다는 논리를 깔고 있다.
그러나 「검은 돈」일 가능성이 높은 이같은 채권매입자금에 세제상의 혜택까지 준다는 것은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깨뜨리며,채권을 살 수 있는 여유있는 계층에 더욱 많은 세제상의 혜택이 주어짐으로써 국민정서와도 어긋난다는 문제점이 있다.
17일 시장에는 증시안정채권,또는 산업안정증권이란 이름으로 4조7천억원어치의 채권을 발행,이중 2조원은 중소기업지원을 위해,2조7천억원은 증권시장안정을 위해 쓰도록 한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현재 매수여력이 고작 5천억원으로 거의 바닥이 나 있는 증시안정기금의 추가출자도 고려될 수 있으나,여기에 돈을 내야 하는 증권사가 당장 울상이고 은행들도 돈이 없어 대출도 제대로 못하는 판이라고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증권사에 회사채 발행을 허용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으나 증시 수급안정차원에서 제조업의 회사채 발행물량도 조정하고 있는 판이라 설득력이 약하다.
결국 어느 것 하나 섣불리 내놓을 만한게 못되며,모두 또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 또 괜히 잘못 냈다가는 발빠른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팔 수 있는 기회만을 제공하며,약발은 고작 2∼3일인데 그 후유증은 두고두고 경제의 주름살을 가져올 수 있다.
증권당국은 스스로 최근의 주가폭락상황을 경제내적인 요인보다는 정치불안정과 돌발적인 사고 등 상당부분 경제외적인 변수에 의한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역으로 보면 대통령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치권의 요구에 정책당국이 흔들릴 수도 있음을 엿보이게 한다. 김영삼 민자당대표가 총재자리를 이어받는 오는 28일 강도높으 증시대책이 나올 거라는 풍문이 주식시장에 나돌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인위적인 증시부양책은 그만큼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당국은 여러면에서 들여다 보아야 하며 우선 정치·경제·사회 각 부문의 안정을 이뤄야 하고,우선 투매니,공황이니 하는 용어 선택에서부터 신중해져야 할 것이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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