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영화천국] 동물배우의 열연 … 그리고 短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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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영화 '…ing'를 보니 거북이 두 마리가 나오던데 진짜로 연기를 한 건지? 최근 영화에 나온 동물 배우는 어떤 게 있었나.

A : 열연한 거북이들이 들으면 섭한 소리다. 비록 모래 깔린 어항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게 전부였지만 시한부 인생을 사는 소녀 민아(임수정)와 아래층 대학생 영재(김래원)의 애틋한 사랑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할 아니었던가. 닐과 암스트롱(영화 속 이름이 실제 이름이다)은 진짜로 연기했다. 지쳐 비실거리다가도 카메라만 돌아가면 불끈 힘을 내 촬영장에서 "거북이가 NG를 제일 안 낸다"라는 칭찬을 들었단다.

이들은 더운 지방에 사는 육지 거북이의 일종이어서 기후 차이에 몹시 힘들어했다. 난생 처음 받는 카메라 스트레스(!)와 긴 대기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산소 호흡기까지 씌웠지만 둘다 촬영이 끝난 지 한달쯤 지나 유명을 달리했다. 혹여 컴퓨터 그래픽을 쓴 게 아닐까 의심했던 관객들은 명복을 빌어줄 일이다.

동물 배우는 사람보다 통제가 힘들기 때문에 아무래도 영화에 자주 나올 수는 없다. 할리우드만 해도 동물이 실제로 연기하기도 하지만 '본격 액션'은 컴퓨터 그래픽의 힘을 상당히 빌려야 한다. 한국 영화는 아직 동물이 '베토벤'급의 주연을 맡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한번 나오면 꼭 "사람보다 낫다"는 얘기를 들으니 신기하다. 사람이 못나서? 아니면 동물이 잘나서?

최근작으로는 곽경택 감독의 '똥개'의 타이틀 롤(?)을 맡았던 개가 있다. 그러나 이 개는 시가만 기천만원대인 벨기에산 셰퍼드 마르노이즈다. 똥개와 거리가 한참 먼데도 똥개라고 불리는 수모를 참았으니 참으로 무던한 견공이다. 주연 정우성과 대면한 지 며칠 만에 운동복 바지를 물고 늘어지며 어리광을 피워댔고 카메라 앞에서도 단 한번의 실수를 하지 않아 "역시 뼈대 있는 종자는 다르다"는 감탄을 자아냈다. 더욱 기특한 건 이 개가 촬영 직전 심장사상충에 감염돼 몸이 아팠음에도 프로 정신을 불태웠다는 점이다.

지난해 '가문의 영광'에서도 강아지와 뱀이 등장했다. 호남 조폭 집안의 고명딸 진경(김정은)과 엘리트 사업가 대서(정준호)를 연결시켜주는 '끈'이었다. 이들도 촬영이 끝난 뒤 아파서 다 죽었다. 오늘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째 '동물 배우 수난사'가 된 것 같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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