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 '퍼 온' 청춘영화 쏟아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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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의 극장가는 어떤 무대가 될까. 얼른 떠오르는 것이 청춘영화의 백가쟁명이 시작되리라는 때이른 짐작이다. 극장가의 대목인 구정 전후부터 '내 사랑 싸가지'(하지원.김재원 주연, 1월 16일 개봉예정)'그녀를 모르면 간첩'(김정화.공유, 1월 30일 예정)'그녀를 믿지 마세요'(김하늘.강동원, 2월 20일 예정)등 줄잡아 10여편의 청춘영화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청춘영화는 인터넷이 진원지라는 점이 공통점이다.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송승헌.정다빈)와 '늑대의 유혹'(조한선.강동원), 이햇님의 '내 사랑 싸가지'와 '내 사랑 일진녀'처럼 인터넷 소설이 원작인 영화도 있고, '그녀를 모르면 간첩'처럼 인터넷에서 인기를 끈 '얼짱'의 사연이 소재인 경우도 있다.

자연히 이들 청춘영화의 눈높이도 인터넷 세대에 맞춰진다. 평범한 여고생과 성격 나쁜 '킹카'대학생(내 사랑 싸가지), 패스트푸드점의 '얼짱'아르바이트생과 삼수생(그녀를 모르면 간첩), '캡짱'이며'얼짱'인 두 라이벌 남학생과 여학생(늑대의 유혹) 등 젊은 관객들이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외모는 '얼짱''킹카'등의 표현에서 짐작하듯 잘 생겼고 예쁘지만 내면은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품인 것이 특징이다. 실연과 비련을 거듭하는 예전의 성인용 멜로물과 달리 발랄한 캐릭터의 힘에서 영화의 주된 재미를 노리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청순가련형이었던 김하늘의 이미지를 1백80도 바꿔놓은 올 봄의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이들 영화의 선배로 꼽힐 만하다. 이 영화는 무려 4백90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예상치 못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충무로의 청춘영화 기획에 불을 당겼다.

영화계에서는 이처럼 제목도 엇비슷한 같은 부류의 영화가 줄잇는 데 대해 부정적 시선이 적지 않다.

불과 2년 전 붐을 이뤘던 조폭 코미디처럼 단품형 상차림이 관객의 기대수준을 하향 평준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이 때문에 중견감독들이 메가폰을 잡은 청춘물은 인터넷발 청춘영화와 은근히 거리를 두려 한다. '내 사랑 싸가지'와 나란히 1월 16일 개봉하는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는 시대 배경이 1970년대여서 사실 요즘 청춘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복고적인 배경에 사실적인 액션이 가미된다는 점도 특색으로 내세운다.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이 전지현.장혁을 주연으로 촬영 중인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도 경찰인 여주인공이 강력반으로 옮겨가는 줄거리에 따라 액션장면이 주요 볼거리로 등장할 전망이다. "에피소드 위주가 아니라 막판에 감동을 주는 데 드라마 비중이 실려있다"는 것이 제작사의 설명이다.

물론 한 해 1백편 가까운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충무로의 역량이고 보면 이들 청춘영화는 그 한 부분일 따름이다.

한편에서는 실존인물의 전기적 사실을 토대로, 드라마적 재미를 더한 영화들이 또 다른 흐름을 예고하고 있다. 방학기의 만화를 원작으로 극진가라테의 창시자 최배달의 삶을 다루는 '바람의 파이터'(양윤호 감독)나 국내 최초의 여류비행사를 주인공으로 한 '청연'(윤종찬 감독), 설경구가 일본에서 활동했던 프로레슬러 역도산으로 변신하는 '역도산'(송해성 감독)과 이범수가 프로야구 만년 꼴찌팀의 패전처리 전문투수로 나오는 '슈퍼스타 감사용'(김종현 감독)이 그런 경우다.

'역도산'과 '슈퍼스타 감사용'을 만드는 제작사 싸이더스의 노종윤 이사는 "올초부터 코미디물의 열기가 식으면서 영화적 무게가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 볼 때가 됐다는 생각들이 많다"고 전했다. 청춘물의 최신감각과 묵직한 드라마의 감동 사이에서 충무로의 무게중심이 어떻게 잡힐지 궁금하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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