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적 단견 벗어날때/김영배(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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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마침내 우리들이 기다리던 그날이 왔다…. 오늘은 우리에게 어떤 날인가…. 앞으로 7시간 동안 시계바늘은 우리의 가슴을 죌 것이다』
「우리별」 KITSAT 1호가 발사되던날 대덕한국과학기술원 인공위성연구센터 지구국의 문 앞에 나붙었다는 이 기원문이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첫 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킨 후 그 성공여부를 판가름할 첫 교신을 가슴 죄며 기다리는 젊은 우리 과학도들의 간절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오는 것 같다.
○자랑스러운 젊은이들
그들은 그 어렵다는 첫 교신을 11시간만에 성공해 낸다. T셔츠차림의 젊은 기술진의 웃음은 밝고 환했다. 팀장의 나이가 33세,대부분이 20대라는 이 젊은 과학기술자들은 우리의 새롭고 신선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올림픽에 나간 우리 젊은이들이 예상치도 않았던 사격,핸드볼,그리고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냈듯이 우리 사회의 저변에서부터 젊고 싱싱한 능력과 도전적인 정신을 가진 세대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우리 정치의 가장 큰 과제는 아마도 이들의 모험적인 도전이 쑥쑥 뻗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고 이들의 젊은 정신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간을 마련해 주는 일일 것이다. 권위주의적이었던 지난 시절 잘못된 행정과 왜곡된 사회시스팀 및 관료적인 절차들이 새로운 시도와 모험들을 차단하고 결국 젊은 세대를 순응주의자로 변질시키거나 냉소주의의 늪으로 몰아넣었던 모습을 숱하게 보아왔다.
우리의 기술환경이나 학계,산업계,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야 할 정치권이나 관청의 풍토들이 기성의 제몫 찾아먹기에 급급해 이런 창조적인 실험들은 뒷전으로 밀려 나기 일쑤였다. 이런 것들이 지금에야 우리의 기술력 낙후로,경쟁력의 약화로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 목소리만 높았지 실질적인 지원과 투자는 인색하다.
정부나 여당은 올림픽의 승전보와 인공위성 발사성공을 엉뚱하게 정권홍보로 몰아가는 인상이다. 신바람을 일으킨다고 『손에 손잡고』를 다시 틀어대고,우리의 「성급한 실망」을 나무란 어느 외국신문의 사설을 계속 강조한다고 해서 어지러운 현실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 젊은이들의 성공을 퇴색시킬 뿐이다.
○정치권 제몫찾기 급급
요즘 우리사회에 대한 위기감이 널리 퍼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지도층의 부패에 대한 위기감,사회기강이 무너져 내리는데 따른 위기감,정치행태에 대한 냉소주의가 빚어내는 정치력 약화의 위기감,집권말기의 통치력 부재상태에 대한 위기감 등이 마침내 우리 사회의 건강한 자신감에 좀스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진단이다.
경제계는 정치를 탓하고,정치인들은 기업의 안이한 태도를 나무란다. 그러나 어디 한 곳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컴퓨터산업이 빈사지경에 와 있는데도 한글표준화 코드하나 합의해내지 못했던 것이 우리의 기업들이었다. 국회도 못열고 티격태격하던 정치권이 올림픽의 개선에 걸맞은 정국타개를 한답시고 합의한게 대통령선거자금을 국고에서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교섭단체 후보 한사람에게 2백억원씩 6백억원을 준다면 「우리별」 10개(총 개발비 69억원)를 개발하고 4백개(1개당 20만달러)를 쏘아 올릴 수 있는 자금이다. 정치권이 국민에게 무엇을 해주었기에 그 많은 돈을 국민세금에서 떼가겠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못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기술화·정보화시대,경제전쟁시대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는 기술투자를 높이고 신기술을 우대하고,정부와 정치권이 앞장 서서 총력지원을 벌여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둘러싼 정략적인 권력암투나 정경유착으로 한건이나 노리는 기업행태로는 경제블록화와 고기술시대를 헤쳐나갈 수 없음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새시대 맞는 정책필요
우리의 진정한 위기는 바로 내일에 대한 준비 부재일 것이다. 전지구적 범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기술과 정보의 시대,경제 권역화시대에 대응하는 것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 우리의 정치권은 앞으로 5년만을 대비하는 단견적인 대통령선거의 정략이 아닌,20세기의 마지막 10년을 마무리하는 새로운 국가경영의 신구상을 내놓을 시기다.<통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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