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인큐베이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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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성의 임신은 당사자가 원하는 임신이냐 아니냐로 크게 나뉘어질 수 있다. 부부간의 합법적 임신도 경제적인 문제 따위로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원하지 않는 경우의 대부분은 여성에 대한 성폭력 등의 결과가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그 어느쪽에도 포함되지 않는 모호한 경우의 임신이 있다. 임신을 원하나 아내쪽의 자궁이상 등으로 아기를 갖지 못하는 부부가 합의해 다른 여자에게 체외수정,임신케 하는 이른바 「대리모」의 경우다.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이미 고려때부터 「씨받이」라는 이름으로 대리모에 의한 출산이 은밀하게 이루어져 왔으나,서양에서 대리모가 보편화 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2∼13년 전부터의 일이다.
이 대리모의 문제는 의학적·윤리적·법률적인 문제들과 함께 종교적인 문제를 야기해 왔다. 종교적인 문제로 크게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은 「인간의 기계화」라는 시각이다. 87년 3월 로마교황청은 전세계적으로 대리모에 의한 출산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는 상황을 개탄해 『인간의 육체가 단지 세포조직과 기관의 복합체로 다뤄져서는 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곧 여성이 「아기 낳는 기계화」하는 세태를 경고한 것이다.
여성이 「아기낳는 기계화」하고 있다는 것은 대리모가 미숙아를 키우는 인큐베이터와 크게 다를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리모 없이는 아기를 가질 수 없듯 인큐베이터 없이는 미숙아가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2년이 넘도록 내전에 휩싸여 있는 유고슬라비아에서 최근 「유고판 씨받이」,혹은 「인간 인큐베이터」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체트닉」으로 불리는 세르비아 비정규군이 세르비아인의 씨를 뿌린다는 끔찍한 의도아래 보스니아지역 크로아티아계 여성들을 상대로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윤간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로아티아는 엄격한 가톨릭교도들로 구성돼 있어 낙태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임신한 여성들을 방치하고 있다 한다. 내전의 원인이 무엇이든지,어느쪽이 옳든지간에 21세기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이같은 천인공노할 만행이 어떻게 공공연하게 벌어질 수 있는지 도무지 어이없을 따름이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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