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도피 직전 수사과장 만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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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지방경찰청은 22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사건을 수사했던 강대원(56.경정) 남대문경찰서 수사과장과 이진영(44.경위) 강력2팀장을 대기발령했다. 서울청 관계자는 "김 회장의 지시를 받고 폭력배를 동원한 혐의가 있는 '맘보파' 두목 오모(54)씨와 4월 중순께 만나 식사를 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서울청은 강 과장과 이 팀장을 피내사자 신분으로 소환해 보복폭행 사건의 핵심 관련자인 오씨와 만난 이유를 집중적으로 추궁할 계획이다. 서울청 관계자는 "강 과장은 수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 과장은 "만난 적도 없고 청탁을 받은 적도 없다"고 밝혔다.

김 회장 폭행 사건은 지난달 24일 언론에 처음 보도됐다. 오씨는 사흘 뒤인 지난달 27일 캐나다로 출국했다. 이에 따라 강 과장이 오씨에게 수사 진전 상황을 사전에 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강 과장과 이 팀장이 수사 대상이 됨에 따라 장희곤 남대문 서장과 경찰 지휘부로까지 책임론이 번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김 회장의 구속에도 불구하고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석연치 않은 의혹도 경찰 감찰을 통해 규명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 수사과장, 왜 조폭 만났나=오씨는 사건 발생 당일인 3월 8일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한화 계열사의 김모 감사를 만나 조폭 동원을 요청받고 두 명을 보복폭행에 가담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오씨는 1980년대 김태촌씨가 두목인 '서방파'의 계보를 잇는 '범서방파'의 부두목급 출신이다. '맘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졌다. 지금도 오씨는 경찰이 동태를 파악하는 조폭명단에 올라 있다.

오씨를 알고 있는 한 폭력조직 간부는 "오씨가 조폭 동원과 사건 무마의 대가로 한화 측으로부터 3억원을 받기로 했는데 선급금만 받고 잔금을 못 받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평소 친분이 있는 강 과장과 이 팀장을 통해 경찰이 개입했다는 것을 흘려 한화 측으로부터 남은 돈을 받아내려 했다는 것이다.

◆ 외압 있었나=본지 취재 결과 이 사건에 대해 첫 첩보 보고서를 만든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광수대) 강력2팀 외에도 두 개 팀이 별도로 내사를 진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세 개 팀 모두 피해자 일부를 정확히 지목할 정도로 발 빠르게 내사를 진행 중이었다. 이후 각각 보고를 받은 광역수사대장이 가장 먼저 보고를 올린 강력2팀에 수사를 전담시키면서 다른 팀은 손을 뗐다.

광수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복수의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수사라인을 정리한 광수대는 피해자 파악을 마치고 소환조사를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서울경찰청에서 "남대문서로 이첩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사건은 인지 및 강력범죄 수사를 전문으로 하는 광수대에서 남대문서로 넘어갔다.

◆ 경찰 지휘부, 정말 사건 몰랐나=수사 초기 늑장 수사에 대한 비판이 일자 남대문서는 지난달 28일 이번 사건에 대한 첩보 보고서를 공개했다.

본지 확인 결과 경찰의 첩보 보고서는 두 종류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먼저 '고과용' 첩보보고가 있다. 매달 외근 경찰은 네 건, 내근자는 두 건의 첩보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언론 보도사항이나 시중의 소문 등 첩보 가치가 떨어지는 내용들을 주로 담고 있다.

또 다른 종류의 첩보 보고서는 상당 부분 자체 내사 진행 뒤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는 '수사 첩보 보고서'다. '고과용' 첩보 보고서와 달리 수사 첩보 보고서는 팀장과 과장 등 수사 책임자의 결재란이 따로 있다. 결재가 떨어지면 기존에 수사 중이던 사안을 미루고서라도 우선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첩보 내용이 단순 폭력 사건이라 할지라도 대기업 총수가 연루됐기 때문에 경찰 지휘부에 보고됐을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김승연 회장은 19일 피해자 여섯 명과 합의했으며 합의금은 김 회장이 법원에 공탁한 90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권호.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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