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낙하산 출신 마사회 전 감독에 '유도 영웅'들 억대 뜯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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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장성호(2004년 아테네).김민수(1996년 애틀랜타)와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인 윤동식(97년) 등 대표적 유도선수들이 감독과 코치에게 금품을 갈취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22일 소속 선수들에게 돈을 뜯어낸 혐의(갈취)로 한국마사회 유도부 전 감독 이모(46)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전 코치 윤모(44)씨는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 등은 98년 8월~2004년 12월 소속 선수 13명으로부터 팀 운영비.계약금 등의 명목으로 150차례에 걸쳐 2억2000여원을 뜯어 낸 혐의다.

◆ 5년간 2억원 넘게 갈취=이씨는 99년 초 소속 선수들을 숙소로 불러 모았다. 이씨는 "유도부 운영이 너무 힘들다. 너희들이 받는 포상금의 20%를 운영비로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경기 출전이나 재계약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포상금뿐만 아니라 이씨는 선수들에게 지급되는 훈련비의 대부분을 챙겼다. 새로 입단하는 선수에게서도 훈련비 등의 명목으로 수백만~수천만원을 받았다.

당시 소속 선수 중의 한 명이 "우리가 왜 돈을 내야 하느냐"고 항의한 뒤 마사회 감사실에 제보를 했다. 이씨는 마사회의 감사가 이뤄지자 2004년 물러났으며 결국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됐다.

이씨는 경찰에서 "관행에 따라 금품을 받아 회식비 등으로 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대부분의 돈은 개인적으로 착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 스포츠팀 감독도 낙하산=한국마사회 유도부 감독직은 스타플레이어 출신 지도자도 오르기 어려운 자리로 꼽힌다. 그러나 이씨는 유도선수 경력조차 없었다. 취미로 잠깐 유도를 배운 게 전부였다. 비결은 낙하산이었다. 이씨는 86년부터 민주당 청년부장을 맡았다. 98년 정권 인수 이후 낙하산 바람을 타고 공기업인 마사회 유도부 감독에 오를 수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철재.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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