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연구 국제기구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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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저는 시집가기 닷새전 사주단자까지 받아놓고 밭에서 일하다 일본 군인들에게 붙들려 정신대로 끌려갔습니다. 그때 나이 17세였습니다.』
10일 오전10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주최로 「정신대문제 아시아연대회의」 첫날 세미나가 열린 서울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 첫번째 희생자증언에 나선 종군위안부출신 노청자할머니(70)의 종군 위안부 경험에 대한 증언이 계속되는동안 일본·필리핀·대만등 동남아 6개국여성대표 30명을 포함한 70여명의 참석자들은 숨을 죽인채 이를 청취하고 있었다.
노할머니는 위안소 생활동안 『조선인인 주제에…』라며 군화발로 얼굴을 채이기도 했으며 하루에 30∼40명을 상대한 탓에 아직까지 다리가 붓고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두번째 증언에 나선 김복동할머니(67)는 『16세때인 41년 통장이 공장에서 일하고 3년후면 돌아올수 있다고해 따라나섰다가 곧장 위안부가 되었다』며 『귀국후 자신과 함께 위안부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유곽으로 빠졌다』고 말했다.
오전동안 계속된 희생자증언을 마치고 이날 오후2시부터는 한국과 일본 대표들의 정신대 실체와 현재 양국의 운동전개방향등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다.
「한국정신대 문제의 사회학적 분석」을 발표한 정진성 정신대연구회장은 『정신대는 일본의 근대가부장적 제도하에서의 차별적 여성관과 식민지 정책의 진전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라며 조선인 종군 위안부는 국가·민족·성·계급의 모순이 어우러져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따라 종군 위안부 문제 제기는 일본 군국주의의 실체를 세계에 폭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한다고 정회장은 강조했다.
「종군 위안부 문제와 일본여성」을 발표한 일본의 스즈키 유우코(일본 부인회의 회원)는 『종군 위안부가 대부분 일본식민지하의 여성들이었다는 점에서 일본은 식민지지배와 전쟁동원에 대한 책임이 막중하며, 특히 전후 40년간 이 문제를 방치했다는 점에서 전후 책임은 더욱 크다』고 말했다.
스즈키는 또 이와 같은 일본의 범죄가 아직까지 일본에서 문제가 되지 않은 이유는 ▲일본정부의 식민지배에 대한 모호한 반성·사죄·보상등 무책임한 자세 ▲조선반도의 분단 고착화와 냉전체제로 인해 책임회피가 가능했던 분위기 ▲일본인 사이의 우월의식 ▲일왕군대의 조직적 범죄에 대한 은폐 ▲여성들이 매춘문제는 자신과 관계없다는 의식으로 무관심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는 오후9시까지 한국·일본측 발제로 계속됐으며 11일 오전에는 대만·필리핀·태국·홍콩등 다른아시아 피해국의 사례발표가 이어졌다. 희생자 증언청취와 정신대 실체에 대한 세미나를 마친 각국 여성대표들은 정신대문제를 연구하는 국제적 상설기구 설치와 일본정부에 진상규명과 피해배상등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양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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