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이니셔티브 취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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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금 우리 정치는 중대한 시험대 위에 놓여 있다. 이 땅에서 과연 의회정치는 가능한가. 복수정당제의 타협정치를 할 수 있는가. 지금의 정치리더십으로 국가발전이 가능하겠는가. 민주헌정에서 가장 기초적인 문제들에 대해 회의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우리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시기를 놓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여야는 국회를 두번씩이나 열고도 원구성조차 못하고 있다. 여야의 대표들이 회담을 갖고도 아무런 타결점조차 찾지 못한채 국회의사당에선 물리적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이 무슨 한심하고 답답한 작태인가. 젊은 청소년들은 올림픽대회에서 마라톤의 월계관을 쓰는 등 종합성적 7위를 마크하여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고 있는 판에 나라의 지도자란 사람들이 이런 기초적인 정치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단체장선거문제와 국회정상화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으면 그것은 이 나라 정치지도부의 양축을 이루고 있는 두 김씨뿐 아니라 정치권의 존재가치 자체에 대한 회의를 부를 우려가 있는 급박한 분위기다. 이 점을 정치지도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우선 집권다수당인 민자당이 이니셔티브를 취해야 한다. 국회에서 일당에 의한 지방자치법개정안 강행처리 발상부터 재고해야 한다. 이번 사안은 그전에 여야가 합의해 입법까지 돼있던 것인 만큼 여당 단독처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일방처리는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의 하나인 다당제의 정신에도 어긋날뿐 아니라 다수의 횡포를 막고 국민의사를 최대한 반영시키자는 대표민주제나 타협정치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다행히 최근 민자당에서 타협안이 거론되고 양김회담이 제안되었다. 여야는 이 회담을 마지막 기회로 삼아 더이상 국민을 실망시키지 말고 며칠이 걸려서라도 단체장선거와 국회정상화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기 바란다.
민자당 일부에서 제시되고 있는 「6대도시 시범실시론」도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긴 하나 여야가 타협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원칙에만 합의할 수 있다면 단체장 선거의 전국 확대에 대비해 시범실시되는 단체장의 임기는 신축성있게 조정될 수 있으리라 본다. 꼭 일부지역의 시범실시론이 좋다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여야가 융통성을 갖고 타협하여 경색정국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민주정치에서는 타협 그 자체가 중요한 가치로서 정당성을 지닌다. 타협에서는 어느 일방의 완승이나 완패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양김은 협상능력을 발휘하여 이 땅에서 의회정치·타협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차세대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음을 지금 국민앞에 입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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