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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사람들의 작은 행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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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코펜하겐에서 자동차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것은 자전거다. 시내 어디서나 경쾌하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시민들을 볼 수 있다. 공공시설이나 학교.관공서 입구마다 자전거 보관시설이 마련돼 있다. 국회의사당 앞에도 자전거가 빼곡히 '주차(駐車)'돼 있다. 국회의원의 3분의 1이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한다. 코펜하겐시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인구 비율을 32%에서 2010년까지 4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자동차를 자전거로 대체하는 '백워드 슬로(backward slow)'운동은 친환경 정책의 소산이다. 1971년 덴마크 정부는 세계 최초로 환경부를 설치했다. 환경부가 중심이 돼 도시공학자.교통전문가.환경운동가 등이 모여 코펜하겐을 '자전거의 도시'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교통 혼잡과 공해 문제를 해결하면서 시민들의 건강 증진에도 도움이 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렸다.

시내 전역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설치됐고, 자전거 전용 신호체계도 마련됐다. 자동차와 교행하는 곳에서는 자전거에 우선권을 줬다. 코펜하겐뿐만 아니라 덴마크 전국에 1만㎞의 자전거 길이 조성됐고, 전국 방방곡곡을 연결하는 3000㎞의 자전거 전용도로망까지 만들었다. 평탄한 지형 덕에 물론 가능한 일이다.

또 자동차에 대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세금을 부과해 국민 스스로 자동차를 포기하도록 유도했다. 덴마크의 자동차 가격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편이다. 수입원가에 25%의 부가세와 180%의 등록세가 더해지면 차값은 원가의 세 배가 된다. 웬만한 소형차 가격도 우리 돈으로 5000만~6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친환경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덴마크인은 터무니없는 차값을 감내하고 있다.

코펜하겐에서 놀라게 되는 또 하나는 덴마크인의 영어 실력이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영어를 막힘 없이 잘한다. 베르트겔 하더 교육장관에게 비결을 물었더니 "더빙이 없는 TV방송 덕"이라고 대답했다. 공영과 민영방송 모두 외국에서 수입한 방송물에 대해서는 덴마크어 자막만 붙여 원어 그대로 내보내는 정책을 오래전부터 실시해온 결과라는 것이다.

덴마크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영어 수업시간만 놓고 보면 결코 우리보다 많지 않다. 그러나 국가별 토플 성적에서 덴마크는 단연 1등(CBT 평균 263점)이다. 한국은 영어교육에 매년 14조원의 사교육비를 쏟아붓고 있지만 토플 성적은 103위(213점)로 최하위권이다.

덴마크인은 어려서부터 TV를 통해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하게 된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면 이미 어느 정도 귀가 뚫리고, 발음이 혀에 익은 상태가 된다고 한다. 덴마크 TV 방송물의 절반 이상이 미국이나 영국에서 제작된 영어 프로그램이다. 어떤 광고는 아예 영어로 방영된다. 교육장관에게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더니 "덴마크처럼 작은 나라로서는 생존을 위해 현실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자기들끼리만 있을 때 덴마크인은 철저하게 덴마크어만 쓴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하는 사람이 많지만 영어 공용어 논의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자기 언어에 대한 자부심과 영어를 활용하는 현실감각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덴마크 물가는 살인적이다. 웬만한 식당에서 혼자 한 끼를 먹어도 200크로네(약 3만4000원)가 나온다. 또 소득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그럼에도 국가별 행복지수는 늘 1등이다. 환경에 대한 애착과 현실적인 열린 사고는 덴마크인의 행복을 이해하는 작은 열쇠인 것 같다.

<코펜하겐에서>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