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기자의영화 영화!] 존 웨인, 로렌스 올리비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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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5월이 생일인 사람이 부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만화 '캔디 캔디'를 모르는 아이가 없던 초등학교 때였죠. 캔디가 다니는 성바오로학원은 5월에 축제가 열리는데, 5월이 생일인 아이들은 꽃마차(!)에 타는 영광을 누리지요.

그 기억이 되살아난 것은 지금 영화제가 한창인 칸 때문입니다. 칸에는 동시대 감독들의 예술영화만이 아니라 지난 세대의 영화를 재조명하는 '칸 클래식'이라는 부문이 있습니다. 올해 그 메뉴 중 하나가 서부 사나이 존 웨인(사진)입니다. 존 웨인이 출연한 '리오 브라보'를 새로 복원한 필름과 1960년대 당시 3D 입체영화로 만들어진 '혼도'를 상영하더군요.

칸은 올해로 60회이고, 웨인은 탄생 100주년이니, 참으로 딱 떨어지더군요. 심지어 존 웨인은 생년월일까지도 100년 뒤의 칸영화제를 겨냥한 듯합니다. 1907년 하고도 5월 26일이니, 살아 있었으면 영화제 기간에 생일상을 받았겠지요.

흥미로운 것은 생전의 존 웨인이 칸영화제와 별다른 인연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60년대 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적은 있어도, 출연작이 칸에 출품된 기록은 없습니다. 무명 시절까지 포함해 100편 안팎에 출연한 이 다작의 배우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예술영화를 선호하는 칸에 적격인 사람은 아닌 듯합니다. 생전에 그는 "나는 항상 존 웨인을 연기했다"고 말했다지요. 그만큼 그의 이미지는 강력하면서도 전형적으로 기억됩니다.

셰익스피어극에 관한 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도 올해 칸 클래식의 주인공 중 하나입니다. 이 사람도 탄생 100주년이고, 생일 또한 5월 22일입니다. 역시 칸에서 수상의 영광을 누렸던 기록은 없습니다.

사실 칸영화제는 제 취향이 아닙니다. 공식 상영에 참석하려면 남자는 나비 넥타이, 여자는 드레스 하는 식의 성장을 요구하는 것부터가 소화불량에 걸리기 십상이지요. 영화라는 장르의 대중성을, 더구나 디지털 복제시대의 편의성을 생각하면 이런 칸의 모습은 비현실적인 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다른 장르에 비해 역사가 일천한 영화를 화려하게 치장하는 기술입니다. 검은 턱시도, 레드 카펫과 고급휴양지 칸의 이미지를 고루 버무려 마치 영화에 대한 최고의 예의를 갖추는 듯 느껴지게 합니다. '노가다'적인 작업까지 포함되는 고단한 생산공정의 결과물이 레드카펫에서는 참으로 화려하게 빛나지요.

영화가 그렇듯 영화제도 꿈의 잔치인 듯싶습니다. 이 영화제가 60회에 이르면서 '세계 최고'를 자부하게 된 원동력 역시 따지고 들자면 그 꿈의 힘 같습니다. 올 칸 클래식에 한국 영화로는 신상옥 감독의 '열녀문' 복원판이 소개됐습니다. 멀리 칸에만 몽환적인 세계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꿈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고들 하니까요.

이후남 기자 <프랑스 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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