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조사행태 재검토 필요"|고고학계, 「비리폭로」 계기로 자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최근 서울대 이선복교수의 고고학계 발굴비리폭로를 계기로 발굴행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져야한다는 지적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연간 발굴 건수가 30건 미만이던 것이 80년대들어 문화재애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크게 늘어나기 시작, 지난해에는 1백건을 넘어섰으나 발굴행태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 그동안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돼 왔었다.
이교수의 언론을 통한 비리주장이 제기되자 한국고고학회(회장 윤세영)는 지난달 중순 긴급 평위원회를 열고 「용역발굴비리 보도에 대한 학회의 입장」이라는 성명을 발표, ▲발굴조사의 부실, 수의 과다등과같은 부작용 제거 ▲발굴 과정·예산 그리고 결과의 공개 ▲발굴을 맡기 위한 로비활동이나 경쟁입찰등의 비학자적 행동의 자제등을 촉구했다.
발굴허가권자인 문화재 관리국도 앞으로 대학과 매장지역개발주체가 계약을 하고 실시하는 용역발굴에 대해 사후에 예산사용 내용을 공개토록하고 잡음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발굴결과를 놓고 벌이는 지도위원회의 회의록을 작성토록 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만으로는 발굴의 문제점을 바로잡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고고학계 소장학자들을 중심으로 지적되고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각대학과 매장지역 개발주체간에 맺어지는 계약단계에서부터 발생한다는 것이다.
우선 발굴의 편중성이다. 1년에 단 한건의 발굴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대학이 있는가하면 도저히 감당할 능력이 없음에도 여러건의 발골을 떠맡는 대학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90년 총76건의 발굴이 실시됐는데 이 가운데 원광대·공주대가 각각 5건을 맡았고 충북대는 4건에 달했다. 대부분의 대학이 1, 2건의 발굴을 실시한 것이 고작이고 한건의 발굴도 못한 대학이 있는것을 감안할 때 편중성에 대한지적은 타당성이 있다. 극단적으로 82년 충북대 10건·경희대 7건, 83년 서울대가 9건의 발굴을 실시했다. 발굴의 질을 위해 발굴능력을 보고 맡길수밖에 없다는 문화재관리국의 주장을 감안하더라도 한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발굴학자의수가 제한돼 있는 실정에서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문화재관리국은 발굴허가가 전적으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결과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정실이나 비리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교수등은 이 문화재위원회가 발굴계획에 대한 실질심사를 할 수 없는 형식적인 것이어서 결국 문화재관리국의 뜻대로 결정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계약에 이어 발굴에 들어가면 전문인력의 부족과 비전문성이 문제가 된다. 발굴현장에는 관련학과학부학생및 대학원생들이 투입되고 막일은 일당을 주고 채용한 인부들이 담당하고 있으나 한 대학이 여러건씩의 발굴을 맡게 되면 자연히 전문인력은 부족하게 되고 발굴의 부실을 초래하게 된다. 특히 고고학을 전공한 교수만이 발굴에 참여하고 관련학과는 배제돼 있어 전문성의 부족이 지적되고 있다. 예를들어 건물터의 경우 건축사, 도자기의 경우 미술사, 연대측정의 경우 물리학등 관계학자들의 참여가 이루어져야 전문성을 높일 수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요원한 얘기다.
발굴이 끝나면 발굴보고서의 제출이 남게 된다. 이 보고서는 2년안에 제출토록 법에 규정돼 있으나 이를 어기는 경우가 많다.
10년이 넘도록 발굴보고서가 제출되지 않은 예도 있다. 이같은 학자들의 나태를 막기위해 문화재관리국은 앞으로 발굴보고서를 기한내에 내지 않는 대학에 대해서는 다른 발굴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발굴담당자들이 지나치게 언론보도를 의식, 유물에 대해 터무니 없이 오래되고 귀중한 것으로 주장하기도해 학문적혼란을 초래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발굴된 유물을 독점하고 공개를 하지 않아 비난을사는 학자들도 있는 실정이다.
발굴보고서가 제출되면 모든 발굴행위는 종료되는 것으로 비용문제는 전적으로 발굴담당자의 자유재량에 속한다. 따라서 여기에 비리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인데 이를 막기위해 문화재관리국이 예산사용 내용을 공개토록한 것이다.
이교수의 발굴비리폭로를 계기로 그동안 묻혀 있던 발굴의 문제점이 학계의 현안으로 떠오른 이상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 대책이 마련돼야한다는 것이 뜻있는 학자들의 주장이다. 일본의 경우 각 지방자치단체 소속으로 매장문화재센터가 설치돼 발굴을 거의 전담하고 있으며 미국은 발굴전문회사가담당,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문화재관리국산하 문화재연구소의 기능을 확대, 발굴기능을 흡수해 전문성을 높이는 대안도 적극 검토해야 할 단계라는 지적이다.<김상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