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性들의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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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대통령 선거가 벌어진 1872년 11월 뉴욕주의 한 투표소. 수전 브라우넬 앤서니가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으면서 세기적인 재판은 시작됐다. 당시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재판에 회부된다. 반 년 뒤 열린 재판에서 앤서니는 벌금 1백달러를 선고받는다. 그녀는 "모든 시민이 법 앞에 동등하다는 인정을 받을 때까지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외친다. 이를 계기로 여성에게 선거권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1920년 미국 정부는 드디어 수정헌법에 '선거권에 성별 제한을 둬선 안 된다'고 적어넣는다.

#2. 1980년 미국에서 징집등록법이 만들어지자마자 '남성들의 반란'이 시작된다. 여성을 군(軍) 징집 대상에서 제외하는 규정을 둔 데 대해 남성단체 등이 불쾌한 성 차별임을 내세우며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들은 "이는 수정헌법에 규정된 여성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81년 6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다. "여성을 징집 대상에서 빼온 관례나 국가방위 여건을 고려할 때 법은 수정헌법을 위반하지 않았다." 판사들은 6대 3으로 여성 측을 옹호한다.

1백년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두 재판은 여성의 지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에서 여성 차별 철폐 운동이 가장 왕성하게 벌어진 것은 60년대다. 이 기간에 복지.교육 등 각 분야에서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이 쏟아진다. 70년대 이후부터는 일부 남성들이 차별 소송을 제기하면서 관련 판례들도 잇따른다. "이혼 후 양육비 지불 의무를 남편만 지게 하는 앨라배마 주법은 무효다"(79년),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진 남자만 처벌하는 캘리포니아주 규정은 적법하다"(81년) 등.

출가한 딸들이 종중 회원이 될 수 있느냐를 다투는 공개 재판이 18일 대법정에서 벌어졌다. 종중은 남성 변호사를, 출가한 딸들은 여성 변호사들을 각각 내세워 열띤 공방을 벌였다. 보수적으로 비춰졌던 대법원이 공개 변론을 통해 성 차별 문제를 다룬 것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한국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고 적극적으로 나설 만큼 남녀가 동등해지는 시대가 머지않아 올 수도 있겠다.

이규연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