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 종교인 이야기 '환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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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환속'에 소개된 전 효인 스님.

#사례 1= 현재 서예가로 활동하는 소석 선생은 과거에 비구니 스님이었다. 총 9년 동안 효인 스님이란 이름으로 생활했다. 외동딸로 자라 외로움을 많이 탔던 그는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어 출가를 했다. 그에게 삶의 변화가 온 건 22년 전. 경기도 안양 관악산 밑의 야학 공부방에서 만난 엄마 없는 남매에 흠뻑 빠져 그들의 어머니가 되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배도 안 아프고 나은 자식을 극진한 사랑으로 키웠다. 그는 수많은 종교가 있으나 궁극은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례 2= 지금도 옛 이름인 스테파노 수사로 통하는 박창광씨는 1977년 서울 용산 채소시장에서 '베들레헴의 집'을 시작했다. 이후 13년간 노숙자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했다. '밥퍼 목사' 최일도씨도 당시 이곳을 찾아와 봉사했었다. 그러나 박씨는 환속할 수밖에 없었다. 몸이 자주 아프다 보니 동료들에게 짐이 됐던 것. 그는 이후 인사동에 찻집을 차리고 거기서 나온 수익금을 쪼개 어려운 이웃을 보살폈다. 요즘 외국인 무료진료소를 준비하고 있다.

출가와 환속, 이 둘은 양 극단에 위치한 것처럼 보인다. 성스러운 삶, 고귀한 인생을 향해 속세를 등진 사람들이 다시 진흙탕 세상으로 돌아오는 건 대단한 역설처럼 비친다. 인내가 부족했던 것일까, 꾀가 생겼던 것일까, 그런 의심도 든다. 하지만 출가와 환속은 참된 자아를 향한 고된 여정이라는 점에서 '쌍둥이'와 같다.

취재 작가 김나미씨가 펴낸 '환속'(마음산책刊)에는 종교를 보는 또 다른 눈이 담겨 있다. 소위 성(聖)과 속(俗)의 2분법이 무너진다. 하루살이가 바로 수도(修道)요, 하루하루 새롭게 태어나는 게 구도(求道)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 각박한 일상을 넘어 '나와 너'가 함께 어울리는 풋풋한 세상이 펼쳐진다. 김씨가 지난 5년간 발품을 팔며 인터뷰해 현장감도 풍부하다.

책에는 모두 다섯명이 소개된다. 저자는 "파계와 환속이란 이름으로 옷을 벗었지만 이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자신을 찾은 성인에 가까운 분들"이라고 평가했다. 세속에서 또 하나의 천국을 발견한 '패자들의 승리'라고도 표현했다. 종교의 고갱이는 '어디에 있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인 것이다.

포교에 열심이다가 종단 분규에 실망해 승복을 벗고 지금은 컴퓨터 수리공이 된 정연 스님, 혼자 있고 싶다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벽촌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있는 카타리나 수녀, 교리를 가르치던 대학생과 결혼했으나 부부생활에서도 큰 고통을 겪은 바오로 신부가 마음을 적신다.

"가정도 작은 절 아닙니까? 식구들이 나의 도반이지요"(정연 스님), "땀을 흘려야 하는 농사일, 그 자체가 수도 아닐까요?"(카타리나 수녀), "들꽃 한송이를 보고 행복하다면 그게 천국입니다"(스테파노 수사) 등이 귓가에 맴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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