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세계 석학 17명 대구서 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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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학을 이해하는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돼 너무 기쁩니다."

퇴계학에 정통한 서양 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미국 워싱턴대 마이클 칼튼(67) 교수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계명대 한국학연구원이 주관하고 한국문학번역원 후원으로 17~18일 계명대에서 열린'한국학 고전자료의 해외 번역 현황과 과제'라는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칼튼 교수는 1988년 한국인 학자도 이해하기 어려운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를 최초로 영역해 컬럼비아대 출판부에서 펴냈다. 94년에는 '사단칠정론'을 번역했다.

"퇴계사상은 생명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을 우리 마음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생태학을 연구하다 우연한 기회에 퇴계를 접하고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6년 전 퇴계 탄신 500주년 때는 안동에서 쉽고 재미있는 강연을 해 유림을 놀라게 했다. 칼튼은 77년 하버드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미국의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학자다.

함께 참가한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도널드 베이커 교수는 한국의 신흥 종교와 무속을 연구해 여러 권의 저서를 냈으며, 다산 정약용에 대한 논문도 다수 발표했다. 베이커 교수는 60년대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을 방문해 호남 지역 고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익힌 전라도 사투리를 지금도 능숙하게 구사한다.

베이커 교수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국가 중심의 번역을 초월하여'라는 주제를 발표했다. 국가가 주도한 간행물 번역에서 벗어나 서민 생활을 그린 구비문학의 번역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두 교수 외에도 세계적인 석학 15명이 이번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했다. 미국과 러시아.독일.프랑스.캐나다.이탈리아.중국.일본 등 8개국의 한국학 학자다. 각국에서 한국학을 연구하다 한 자리에 모인 이들은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동료애'를 확인하기도 했다.

기조 발표자인 모스크바국립대 미하일 팍(89) 명예교수는 '삼국사기'를 포함해 300권 이상의 한국학 관련 서적을 번역한 고려인 2세다. 이탈리아 안토네타 브루노 교수는 한국의 샤머니즘에 대해 많은 저서와 논문을 쓴 한국 입양아 출신 여성이다.

한국학 정교수는 유럽 전역에서 다섯 명 정도 되지만 독일 보쿰대 마리온 에거트 교수는 한국학을 전공해 일찌감치 정교수가 된 한국 한문소설에 정통한 40대 초반의 여성 학자다. 이밖에 미국 베스트 교수는 삼국사로, 미국 에드워드 슐츠 교수는 고려사 전공자로 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저서를 펴냈다. 이번 행사는 한국학의 해외 번역 현황, 한국 역사와 사상.문학 자료 등에 대한 주제 발표와 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이들은 19일 경주 다보탑.석가탑 등 경북 지역의 탑을 둘러본 뒤 20일 한국을 떠났다.

대구=송의호.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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