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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혐의 벗고 부패 오명 씻고 컴백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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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06면

리빈

 “제가 원숭이띠라 장난이 좀 심합니다.”

‘실종 4개월’ 공안 체포說 나돌던 리빈 前 주한 중국대사

 지난 2001년 9월 베이징. 한국 대사 부임을 앞두고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단과 만난 리빈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원숭이 해인 1956년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장난이 심한 게 아니라 재주가 많은 것이겠지요.” 임지로 떠나는 리빈에게 한국 특파원들은 덕담을 건넸다. 그러나 아뿔싸, 정말 심한 장난을 친 것일까. 올해 설 직후인 2월 20일 리빈이 중국 공안당국에 소환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은 “직위에서 떠났다”고 확인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데…”라는 탄식이 그의 한국 지인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리빈의 혐의는 크게 세 가지로 추정됐다. 첫째는 국가기밀 누설. 홍콩 명보(明報)는 2006년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일정을 한국ㆍ일본 등 외신에 흘렸으며 이게 문제가 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리빈이 중요 정보를 한국의 지인에게 제공해 왔으며 이게 화근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에 그 한국 지인이 누구냐, 제공한 정보가 무엇이냐 등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둘째는 부패 사건 연루다. 리빈은 주한 대사 재직 때 많은 한국 기업인과 어울렸다. 엄청난 폭탄주 주량이 폭넓은 사교의 바탕이 됐다. 주량은 리빈 자신도 모른다. 이제까지 가장 많이 마신 것은 폭탄주 열여섯 잔 반. 열일곱 잔째를 마시는데 동석한 이가 쓰러지는 바람에 잔을 비울 수 없었다. 그와 만나려면 최소 석 달 전에는 예약해야 할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처럼 잦은 기업인과의 교제가 결국 부패 문제로 이어졌다는 이야기였다. 셋째는 기밀 누설과 부패 문제가 모두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리빈의 신상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말은 지난해 여름부터 흘러나왔다. 2005년 8월 한국을 떠나 외교부 북핵 대사가 됐던 그가 2006년 6월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시 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다. 중국엔 ‘과즈(掛職)’ 단련이란 제도가 있다. 중앙 간부에게 적(籍)은 원 소속 단위에 걸어두되 지방에 근무하면서 민중의 삶을 체득하게 하는 것이다.

 리빈도 이에 따라 웨이하이로 갔으나 주한 대사까지 지낸 사람의 격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산둥성 부성장이나 적어도 칭다오(靑島) 부시장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다. 이 때문에 올해 초 공안 조사설이 나오자 마침내 터질 게 터졌다는 말이 돌았다.

 그럼 리빈은 어떻게 다시 복귀한 것일까. 리빈은 지난 4개월간 자신에게 씌워진 각종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꾸준한 소명작업을 해 왔다. 우선 기밀 누설과 관련해 이른바 ‘XXX 리포트’로 불렸다는 한국 지인에게 제공한 정보는 기밀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고 한다. 리빈 정도의 간부가 주고받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부패 문제 또한 처신에 문제가 있었던 정도이지 범죄로까지 볼 수 없는 사항이라고 한다. 웨이하이 부시장 업무를 수행하며 한국 기업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이 정도는 투자 유치를 위한 선심성 차원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리빈은 치명적인 기밀 누설 혐의는 벗었고, 경제 문제 관련 근신 정도의 주의를 받은 것이다.

 이에 국제문제를 다루는 연구원 신분으로 복귀가 허락됐다. 그러나 근신 차원에서 공산당원으로서의 권리 행사엔 제한을 받는다고 한다. 당원의 권리는 회의 참석, 정책 문제 토론, 다른 당원 비판, 선거권 및 피선거권 등이다. 한편 리빈의 복귀와 관련해 북한에서 19년, 한국에서 7년 등 생애의 절반이 넘는 26년을 한반도에서 보낸 그의 전문성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 1983년과 2001년 김정일의 상하이 방문 때 안내 겸 통역을 맡은 이가 그였고, 2000년 평양 근무 때 김정일과 5시간이나 술잔을 기울인 것도 그였다. 남북한 모두에 정통한 한반도 전문가로서의 그의 역량을 높이 샀다는 분석이다.

 나무에서 떨어졌던 원숭이가 이제 다시 나무에 오르는 것 같다.

 리빈
1956.7.7 베이징 출생
1973~76 김일성대 유학
1977~82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 근무
1983~86 중국외교부 아주국 근무
1987~89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 2등 서기관
1991~94 외교부 아주국 한국과장
1994~97 한국 주재 중국대사관 정무참사
1997~2001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 공사참사
2001.9~2005.8 한국 주재 중국대사
2005.8~2006.6 외교부 북핵 전담대사
2006.6~2006.12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부시장
2007.1~2007.4 조사 받음
2007.5~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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