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리 철들지 말고, 연어처럼 거슬러 오릅시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호 05면

삽화 문학동네 제공

한번 시인은 영원한 시인이다. 일찍 죽으면 요절시인이요, 시를 안 쓰면 절필시인이다. 국어대사전에도 일상용어에도 ‘전(前) 시인’은 없다. 하물며 8권의 시집을 냈다면 ‘천생 시인’이다.

그런데 안도현(46) 시인은, 거짓말 조금 보태 독자의 8할이 그를 소설가로 안다. 작가라는 말도 어색한데 소설가란다. 심지어 문학강연회 사회자가 그를 동화작가라고 소개할 때도 있다. 애인을 부인이라고 부르는 꼴이다.

사회적으로 그의 정체를 혼동하는 이유는 『연어』(문학동네) 때문이다. 지금까지 약 72만 부가 팔렸다. 그가 쓴 나머지 모든 책의 총 판매부수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그는 시집 8종, 『연어』를 제외한 어른을 위한 동화 6종, 산문집 2종, 동화 3종, 그 밖의 책 6종을 펴냈다.

『연어』의 저자가 소설가로 알려진 것은 책이 서점의 소설 코너에 꽂혔기 때문이다. 덕분에 출간 초기에는 중ㆍ고등학생이 아니라 20대 여성들의 손을 탔다. 또 『연어』의 장르는 출간 당시 생소하기 짝이 없는 ‘어른을 위한 동화’였다. 그러니 많은 독자가 그를 동화작가로 착각할 만하다.

사진 신인섭 기자

100쇄 돌파 스테디셀러
그 『연어』가 곧 100쇄를 돌파한다. 1996년 3월 첫 출간 때를 포함해 인쇄기를 100번째 돌린다는 뜻이다.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위에 오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나 11년2개월간 끊임없이 팔리며 진정한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애매모호한 장르였던 ‘어른을 위한 동화’는 한국 출판의 한 장르가 됐다.

우리 독서계에서 100쇄 인쇄는 100만 부 판매보다 드물고 어렵다. ‘베스트셀러 오브 베스트셀러’인 밀리언셀러는 1980년대 후반 이후 10여 년간 한두 종씩 꾸준히 나왔다. 반면 100쇄를 돌파한 책은 손에 꼽힌다. 『광장』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당신들의 천국』 『토지』 『태백산맥』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십수 년 내지 수십 년에 걸쳐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순식간에 팔린 뒤 순식간에 잊혀지는 밀리언셀러보다 귀하다. 세월의 풍화를 견뎌낸 작품이라는 사회적 인증을 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시집은 초판도 안 팔리는 현실에서 100쇄의 책을 갖게 되는 안 시인의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까. “갑자기 100쇄가 됐다면 들뜨고 달떴을 텐데, 그간 판매 그래프가 수평선이어서 그런지 특별한 느낌은 없어요.”

『연어』는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가 서로 사랑하면서 폭포를 뛰어넘어 모천(母川)으로 돌아가는 대장정 이야기. 200자 원고지 300장, 중편소설 분량에 삶과 사회와 역사의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담아냈다. 다른 문학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제목은 ‘연어’이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다. 굳이 소설의 아래 갈래로 치자면 우화소설인 것이다.

그렇다면 연어가 모천회귀하듯 인간이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 그의 첫 책이자 첫 시집인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 이후 줄기차게 추구한 깨끗담백함, 이웃과의 연대, 그리고 공동체 정신의 회복일 것이다. 그는 이를 ‘철들지 말기’라고 요약한다.

“사람이 회귀할 곳은 고향이 아니겠지요. 방송용 멘트로 말하자면 ‘철이 덜 든 곳’으로 가기쯤 될까? 우린 너무 철들어 있습니다. 다들 조금이라도 더 낮추고 덜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철들지 말기’라는 주제의식은 『연어』에서 ‘거슬러 오르기’로 표현된다. 세상을 거스르기도 벅찬 마당에 폭포를 오르기까지 하는 연어의 생태. 그게 창작의 모티브였고, 감동의 원인이었으며, 스테디셀러의 요인이었다.

연애하는 맘으로 글쓰기
북태평양 베링해를 거쳐 초록강으로 돌아와 폭포 앞에 도착한 연어 떼가 대토론을 벌인다. 그들의 선조가 그랬듯 목숨 걸고 폭포를 거슬러 오를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준 수로를 따라 올라갈 것인가. 우리의 주인공 연어들은 전자를 택한다.

“우리가 폭포를 뛰어넘는다면, 그 뛰어넘는 순간의 고통과 환희를 훗날 알을 깨고 나올 우리 새끼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주게 되지 않을까? (중략) 우리가 쉬운 길 대신 폭포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뿐이야.”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속성 덕분에 90년대 중·후반 ‘최후의 운동권’은 대학 신입생들에게 『연어』를 권했다. 80년대식으로 말하자면 『연어』는 의식화 교육을 위한 시각교정 텍스트였다. 운동권 선배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거친 말랑말랑한 아이들에게 『해방전후사의 인식』 대신 알을 깨고 나오는 『데미안』과 거슬러 오르는 『연어』를 미끼로 던졌던 것이다. “서서히 조금씩 길들여지다 보면 먼 훗날 폭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연어는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된다.”

그가 구상 중인 후속편(제목 미정)도 마찬가지다.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의 2세들이 알에서 깨어나 바다로 향하는 이야기다. 거듭 태어남의 통과제의가 『연어』에서는 폭포 거슬러 오르기로 표현됐다면, 속편에서는 민물에서 바닷물로 건너가기로 묘사된다. 염분량의 차이로 인한 깊은 육체적 고통을 돌파하는 어린 연어의 용기와 도전이 최대 관전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민물과 바닷물의 교차 지점은 청소년들이 너와 우리, 그리고 세상으로 향하는 입사(入社)의 시험무대이겠다.

안 시인도 연어처럼 산 듯하다. 거슬러 오르며 철들지 않기를 여러 번 감행했다. 문학청년 시절에는 문학의 바다에서 순교하기를 꿈꿨다. 철 좀 들었나 싶더니 전교조 해직교사가 됐다. 94년 복직했나 싶더니 전업시인으로 8년을 보냈다. 글쓰기가 생의 목표였고 생활의 수단이었다. 집필 노동자, 글쓰기 노동자로서 한 해에 원고지 2000장 분량을 쓰기도 했다. 그에게는 다산성의 시대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2004년 전주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됐다. 하지만 문학적 낭만주의자의 면모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제자들과 한 달에 서너 번 술을 마신다고 했다. 그들의 숨어 있는 열정을 끌어내주고 싶어서다. “연애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라”는 가르침이다. 제자들이 민물에서 바닷물로 나아갈 때 글쓰기는 그들에게 값진 재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시대의 젊은 연어들에게 섭섭한 점 하나. “우리 때는 굶어죽어도 문학한다고 덤볐는데, 요즘엔 먹고사는 문제와 결부시켜서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데요. 다들 너무 일찍 철든다니까요.” 철없는 스승과 철든 제자들의 술자리라니.

---
안도현

1961년 경북에서 태어나 자랐다. 원광대 국문과 입학 이후 전북에서 살고 있다. 그에게 모천은 경상도, 바다는 전라도인 셈이다. 형식미를 중시하면서도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감정에 충실한 문학적 유전자를 각각 새겨준 곳들이다.
20세 때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3세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돼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이 시대에 드문 이상주의자이자 낭만주의자 성향을 지녔다는 평이다.
그는 시인이다. 시집 『모닥불』『그대에게 가고 싶다』『외롭고 높고 쓸쓸한』『그리운 여우』『바닷가 우체국』『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등을 냈다. 어른을 위한 동화 『관계』『사진첩』『짜장면』『증기기관차 미카』, 산문집으로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원광문학상, 모악문학상, 이수문학상 등을 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