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나는 문장 베껴뒀다 ‘재활용’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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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07면

일러스트=강일구

영어만 잘하면 만사형통일 것이라는 기대에 전국민이 영어 공부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이런 우리나라에서 영어 글쓰기를 자신 있게 하는 이들은 영어 말하기를 잘하는 이들보다도 희귀하다. 영어 말하기는 실력이 모자라도 자신감 있게 거침없이 말을 내뱉으면 실제보다 잘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반면 영어로 글쓰기에서는 없는 실력을 과대포장할 수 없다. 영어 글쓰기는 진짜로 실력을 향상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글쓰기 6가지 팁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영어 글쓰기를 잘할 수 있을까? 영어 글쓰기 학습법 전체를 거론하자면 5박6일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현재의 영어 실력에 관계없이 활용할 수 있는 쉽고 효과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영어로 글을 쓸 때 명심해야 할 습관을 여섯 가지로 정리했다.

① 아우트라인(outline)을 먼저 만들자
자유연상 기법은 창의성을 키우는 데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시간에 쫓기며 영어 글쓰기를 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소모적인 작업이다. 글의 목적과 대상에 따라 간결하게나마 아우트라인을 작성하는 게 바람직하다. 아우트라인에는 글의 서론ㆍ본론·결론에 따라 전달할 내용을 정렬하면 된다. 그렇다고 머릿속으로 이미 다 구상해 놓았다고 안심하는 것은 금물이다. 영어로 글을 쓰다 보면 문법 확인하고 사전 찾아보다가 글의 본 목적을 잊어버리기 쉽다. 아우트라인 활용은 신속하게 글을 완성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② 목적에 맞는 글의 양식을 활용하자
미국인들은 옷차림의 경우 TPO(time, place, occasion) 즉 시간, 장소, 목적을 매우 중요시한다. 평상시에는 편안한 청바지 차림을 하고 다니지만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을 관람할 때에는 정장을 입는다. 글도 그 목적과 독자의 특성에 따라 활용하는 양식과 문체가 다르다. 가장 흔히 쓰는 e-메일은 간결하고 격식을 따지지 않는 반면 편지의 경우 제일 위에는 수신자의 이름과 주소, 그리고 편지를 쓴 날짜가 있다. 그리고 문서 서식도 상대적으로 더 까다롭다. TPO에 알맞은 문서 양식을 제대로 활용하는 건 서양 문화권의 예의범절을 지키는 것이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살면서 존댓말을 배우고 사용하는 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서점에서 판매하는 영어 문서 양식 서적을 한 권 정도 구비하는 게 좋은 글쓰기의 필수요건이다.

③ 초안은 거침없이 그리고 수정 작업은 꼼꼼히 하자
영어 글쓰기에서 문장 하나하나가 만족스러운 수준이 될 때까지 다듬다 보면, 한 시간이 지나도록 10문장도 못 쓰는 난감한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속도감 있는 영어 글쓰기를 원한다면 아우트라인에 따라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작성해 보자. 이때 영어로 모르는 표현들은 국문으로 그냥 두어도 무방하다. 중요한 것은 글의 전반적인 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초안이 작성되고 나면 한영사전을 꺼내들고 모르던 단어들을 삽입해 넣는다. 그리고 문법 확인 작업은 그 뒤에 한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글을 만들고 다듬어 나간다면 마감시간에 임박해서 “아직 반밖에 쓰지 못했어요”라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놔야 하는 경우가 줄어들 것이다.

④ 초보일수록 무조건 따라 하자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영어 글쓰기 실력을 꾸준히 향상시키는 데에는 무조건 따라 하는 것만큼 유용한 방법이 없다. 한 예로 나는 미국 거주 시절, 한 학생이 편지의 끝에 “Sincerely” 대신 “With love and respect”를 쓰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들에게는 요즘도 이 표현을 쓴다. 또 다른 예로, 외국인 고객과 e-메일을 주고받는다고 가정하자. 그의 e-메일에는 인사말ㆍ맺음말 등 분명 ‘재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표현들이 있을 것이다. 이 경우, 그 문장을 적어둔 후 틈나는 대로 ‘도용’하면 된다. 이는 이미 완성된 인테리어 장식이 다 구비된 집에 들어가 사는 것만큼이나 편리하다.

⑤ 유의어 사전을 가까이하자
고등학생 이상의 미국인이라면 영어사전은 없어도 누구나 유의어 사전(Thesaurus) 한 권씩은 가지고 있다. 유의어 사전 활용이야말로 큰 노력 없이 영어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영어 글쓰기에서는 같은 단어나 표현을 가급적 반복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같은 말을 다양하게 구사한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데는 유의어 활용이 적격이다. 예를 들자면, 흔히 쓰는 ‘happy”(기쁘다, 행복하다)’라는 단어의 유의어로는 ‘glad, thrilled, ecstatic’ 등이 있다. 그런데 유의어 사전을 활용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면 denotation(단어의 뜻)과 connotation(단어의 함축적 의미)의 차이를 아는 것이다. 한 예로, ‘happy’는 일반적으로 가장 흔히 쓰이는 가장 평이한 표현이다. 반면 ‘glad’는 이보다 다소 편안한(informal)한 상황, 즉 친구끼리 사용하지만 고객사에 보내는 편지 등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또 ‘thrilled’나 ‘ecstatic’은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으로는 적격이지만 첫 만남의 기쁨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면 다소 과장되고 진솔(sincere)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⑥ 중학교 2학년 문법을 활용하자
중학교 2학년에서는 주어와 동사의 일치, 단수와 복수, 그리고 단어의 철자를 공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문법 원칙을 이후에도 많이 배웠지만 영어로 학술논문을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중학교 2학년 문법 실력으로도 충분하다. 필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주어와 동사의 일치 등이야말로 한국인들이 영어로 글쓰기를 할 때 가장 많이 틀리는 사항이다. 중학교 2학년 문법만 적절히 활용해도 좋은 영어 글쓰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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