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명예훼손 포털도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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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만도 못한 ×자식 김○○뿐 아니라 그 가족도 다 똑같은 인간들이다."

김모(31)씨는 2005년 5월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들어갔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자친구 서모씨의 사연을 소개한 기사 밑에 김씨와 김씨 가족을 비방하는 '악플'(악성 리플)이 수천 개 달려 있었던 것. 한 네티즌은 김씨를 비난하는 카페까지 개설했다. 그의 실명과 전화번호는 물론 소속기관과 사진까지 공개됐다.

고통에 시달리던 김씨는 "허위사실이 유포돼 피해를 보았다"며 2005년 포털 운영사 네 곳을 상대로 각각 5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NHN(네이버), 다음커뮤니케이션(다음), SK커뮤니케이션즈(네이트.싸이월드), 야후코리아(야후) 등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부장판사 최영룡)는 18일 "포털사이트는 단순한 정보의 전달자가 아니므로 명예훼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김씨에게 모두 160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판결했다. 최영룡 부장판사는 "이번 판결은 포털의 기능.책임.주의 의무에 대해 포괄적인 판단을 내린 첫 사례"라며 "인터넷을 통해 영리활동을 하는 포털 운영사들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각종 언론기사를 편집해 보도형식으로 내보내는 등 '유사 언론'으로 기능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엄격하게 견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포털사이트의 운영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포털 운영사들은 네티즌들이 댓글.블로그.검색 서비스 등을 통해 김씨를 비방하도록 방치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언론사가 작성한 기사의 내용에 대해선 책임이 없다'는 운영사 측 주장에 대해서도 "포털은 흥미를 끌기 위해 기사 제목을 변경하기도 하고 댓글 공간을 만들어 여론 형성을 유도하기도 하므로 단순 전달자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성우 기자

◆ 사건의 발단=2005년 4월 서모씨가 음독자살을 하면서 비롯됐다. 서씨의 어머니는 딸의 미니홈피에 자살의 원인이 김씨에게 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은 네티즌을 통해 순식간에 번졌고, 일부 인터넷 매체가 이를 기사화하자 김씨를 비난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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