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호모 팔락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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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개그우먼 이영자씨의 거짓말이 난리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경제야 놀자'에서 한 거짓말이다. "재미를 위한 과장"이었다지만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미 거짓말로 방송 활동을 중단했던 그녀다.

방송의 거짓말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토크.오락 프로에서는 스캔들이나 사생활, 엽기 체험을 과장하는 거짓말이 난무한다. 모두 "재미있으라고 한 소리들"이다. SBS '야심만만'에 출연한 개그맨은 여가수와 열애 중이라며 객석을 놀라게 한 후 곧 거짓말이라고 밝혔다. 이 '거짓말 열애설'은 마치 진짜인 것처럼 여러 차례 예고 방송됐다. 오락 프로가 애용하는 연예인간 '러브 모드'도 사실인지, 조작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출연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려내는 SBS '진실게임'에서는 진짜들의 가짜 이력이 여러 번 들통났다.

다큐.시사 프로도 예외 없다. 한 다큐는 출연자의 사연을 극적으로 과장해 물의를 빚었다. 시사 프로의 모자이크 인터뷰 화면에 다른 사람 인터뷰 화면을 도용하는 일도 벌어졌다. 간 큰 허위 보도다.

이처럼 명백한 거짓말만 문제는 아니다. 어쩌면 TV는 그 자체가 거대한 '거짓말 세계'다. 토론 프로의 정치가들은 자신을 뽑으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고 거짓말하고, 드라마는 사랑은 영원하다고 거짓말한다. 물론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하는 것은 CF다. 영어 이름 아파트에 살면 저절로 귀족이 되고, 쇼를 해야만 인생이 즐겁다고 거짓말한다.

김두식 교수는 거짓말을 권하는 한국 사회를 비판한다.'국기에 대한 맹세'는 전 국민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집단 의례다. 증명서류를 까다롭게 요구하며 절차가 복잡한 것은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는 전제 때문이다('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여러 정치적 조작 사건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에게 '속지 않는 능력'이 생긴 것이라고, 책은 말한다.

물론 인간은 하루 평균 200번 거짓말하는 상습 거짓말쟁이다. 의도하지 않은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을 포함해서다. 인지과학자 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는 거짓말이 진화에 유리했다며, 인간을 '호모 팔락스(Homo Fallax.속이는 인간)'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건 너무 심하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컷 거짓말을 해 놓고 "뻥이야" 하는 꼴이다. 재미만 있으면 그만 아니냐는 태도다. 시청자까지 거짓말쟁이로 공모시키려는 뻔뻔한 시도다. 이런 거짓말이라면, 정치판에서 너무 많이 봐 하나도 재미없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