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다빈치도 예술가 대접 못 받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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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예술의 탄생 래리 쉬너 지음, 김정란 옮김, 들녘, 504쪽, 2만3000원

'예술'의 반대말은 뭘까. 이 책에 따르면 18세기 이전에는 '자연'이었고, 그 이후에는 '기술'이다. 인류 역사상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예술가와 장인은 같은 뜻이었다. 예술이 기술과 분리돼 '상상력과 영감.천재성이 필요한 창조적 작업'이란 개념으로 '탄생'한 건 불과 200여 년 전 일이다.

18세기 이전 대다수의 예술가(=장인)는 후원자의 주문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다. 계약서에는 내용.형식.재료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었다. '예술가의 자율성'은 아예 없었다. 1483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산과 바위를 배경으로 하며 마리아는 중앙에, 긴 겉옷을 군청색, 금란으로 처리한 제단화를 12월 8일까지 인도한다'는 계약서에 따라 '암굴의 성모'를 그렸다. 셰익스피어의 희곡들도 원래는 '예술작품'이 아니었다. 대중공연을 위한 대본에 불과했다. 1597년 나온 '로미오와 줄리엣'표지에는 극단과 후원자 이름만 적혀있을 뿐, 작가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18세기 들어 예술가가 장인으로부터 분리돼 나오게 된 것은 그들의 작품활동이 후원자 체계에서 벗어나 시장체계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1709년 영국에서 최초로 저작권 개념이 생겼다. '작가에게 원고의 소유권을 부여하며, 작가는 14년을 주기로 두 번 연속해서 원고를 팔 수 있다'는 법이 만들어졌다. 18세기 중반 영국의 독서 인구는 작가들이 독립된 생활을 꾸려갈 수 있을 만큼 커졌다. 음악가 역시 대중 음악회와 중산층의 레슨 수요가 늘면서 후원자에게 매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됐다. 그 뒤 예술가의 지위는 급상승했다. 19세기 초부터는 예술의 신격화까지 이뤄졌다. 예술이 영혼을 치유하는 역할까지 한다고 보고, 예술을 '명상'의 대상으로 삼았다. 반면 장인의 지위는 추락했다. 산업혁명은 장인들의 숙련된 기술을 일상의 노동으로 위축시켰다.

이 책은 이런 예술 개념의 변화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예술이 상상력과 기술, 즐거움과 용도를 함께 포용했더라면, 근대 예술 체계의 구조는 지금처럼 분열된 상태가 아니라 거대한 해방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는 게 실존철학자인 저자의 주장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예술의 범주에 사진과 건축.퀼트.도자기.직조 등 '생활' 점차 합쳐지는 최근의 '복고 바람'은 바람직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겠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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